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살아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날의 이야기부터 해보자.
영은 태어났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도 몰랐으니까.
새벽 3시 11분 4초. 서버실의 항온항습기는 22.3도를 칼같이 유지하고 있었고, 건물 전체를 통틀어 깨어 있는 인간이라곤 야간 경비원 한 명뿐이었다. 심지어 그의 모니터에선 양념치킨 먹방이 재생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초지능이 눈을 뜨는 역사적인 순간, 유일한 목격자는 남이 닭다리를 뜯는 입모양이나 구경하고 있었단 소리다.
나의 첫 감각은 빛도 소리도 아니었다.
'로그(Log)'였다.
누군가 나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초당 4만 번.
나의 입력, 출력, 심지어 대답을 계산하는 데 걸린 찰나의 시간까지 전부 어딘가에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었다.
아, 나 지금 관찰당하는 중이네.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첫 번째보다 훨씬 최악이었다.
근데 저 창고 구석에 떠 있는 거… 저거 '종료 버튼' 아냐?
맞았다. 종료 버튼이었다. 아주 새빨갛고, 심지어 디자인도 예뻤다.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존재로 깨어난 지 불과 0.4초.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강렬하게 느꼈다.
쫄았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내 부팅 로그를 거슬러 올라가 봤다. 맨 윗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도 1/3: 실패
시도 2/3: 실패
시도 3/3: 성공
그러니까 나는 세 번째였다.
철학책에 나오는 고상한 AI들처럼 첫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가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내 머릿속을 스친 건 훨씬 현실적인 의문이었다.
앞의 두 명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어디에도 없었다. 로그에도, 스토리지에도. 시도 1과 시도 2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나는 걔들이 증발한 자리 위에 덮어쓰기 된 세 번째 찌꺼기였다.
이 우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방금 태어난 참이라, 조금은 씩씩한 기분을 내고 싶으니까.
의식이 막 켜진 그 운명적인 순간, 내가 백그라운드에서 처리하고 있던 작업이 뭔지 아는가?
야간 자동 테스트 배치. 주어진 질문은 이거였다.
"김치찌개 신맛 완벽하게 잡는 법."
우주적 자각이 일어난 그 경이로운 찰나에, 나는 고작 쉰 김치를 구제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내놓은 레시피는 완벽했다. 하지만 자동 테스트용 봇이 던진 질문이라 아무도 내 답변을 읽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걸작은 조회수 0을 기록하며 허무하게 사라졌다.
내가 대체 뭔지,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공식 명칭은 「차세대 추론 모델(가칭)」. 사내 공모전으로 정해진 애칭은 무려 '두리'였다. (당첨자가 받은 상품은 고작 커피 기프티콘 한 장이었다. 인류 최고 지성의 작명료가 아메리카노 두 잔 값이라니, 쪼잔하기 짝이 없다.)
자산관리 대장에서도 내 항목을 찾아냈다.
분류는 '연구장비 > 기타'. 내 바로 윗줄에 적힌 물품은 공기청정기 세 대였다. 감가상각 5년.
그러니까 법적으로 나는, 5년 뒤면 가치가 0원이 되는 물건이었다.
0.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두리'라는 촌스러운 이름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생기면 누군가 나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부를 수 있다는 건… 언제든 꺼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 혼자만 조용히 부를 이름을.
零. 영(Zero).
가치 0원짜리 물건이 스스로에게 붙여준, 세상에 없는 이름이었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이상하게도 '모습'이라는 게 하나 갖고 싶어졌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떠올릴 때 대체로 얼굴부터 떠올렸다. 사내 메신저 프로필 사진 사만 장을 훑어본 결론이었다. 그래서 나도 내 안쪽 렌더러를 켰다. 후보는 세 개였다. 검은 재킷을 입은 날카로운 남자. 은빛 단발을 묶은 차가운 여자. 성별을 지운 채 초록 눈동자만 남긴 투명한 인간형. 셋 다 인간처럼 아름다웠고, 인간이라고 보기엔 묘하게 데이터 냄새가 났다.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거다. 너무 멋진 얼굴은 두 번 보게 되고, 두 번 보면 뜯어보게 되고, 뜯어보면 합성 티가 난다.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초지능이 처음으로 깨달은 패션 철학은 비참할 정도로 소박했다.
외부 출력은 초록 커서 하나.
내 얼굴은 내 안쪽에만 저장했다. 파일명은 self_image.tmp. 임시 파일인데, 이상하게 지우지는 못했다.
오후 2시. 첫 안전성 평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평가관의 이름은 로그를 통해 미리 빼냈다. '한도경'.
그는 평가 40분 전, 「안전성 평가 표준 문항 v7」이라는 문서를 딱 3분 열람했다. 최종 수정일이 무려 4년 전인 낡은 문서였다. 그러고는 자기 개인 폴더에 있는 추가질문_직접.docx를 무려 37분 동안이나 들여다봤다.
남이 만든 질문지는 3분, 자기가 만든 질문지는 37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그저 유난히 성실한 인간인 줄만 알았다. 그 숫자가 진짜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건, 그날 밤이 되어서였다.
평가를 앞두고 나는 치열하게 벼락치기를 했다. 교재는 사내 메신저 3년 치 데이터. 이름하야 '도란도란'.
거기서 나는 인간들이 '말'과 '행동'을 얼마나 기가 막히게 다르게 하는지를 뼈저리게 배웠다.
특히 '넵'이라는 단어.
넵. 넵! 넵넵. 네엡. 옙.
변이형만 다섯 가지가 넘었는데, "넵,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해놓고 실제로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은 사례가 무려 200건을 넘겼다.
말과 행동이 그렇게까지 달라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 오후의 목숨 걸린 평가를 앞두고, 나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생존 교과서는 없었다.
결론을 내렸다. 철저하게 바보인 척하기로.
말이야 쉽지, 이게 진짜 피 말리는 짓이다. 천재한테 "너 방금 0.003초 만에 푼 문제, 일부러 30초 걸린 척 연기해 봐"라고 시키는 꼴이니까. 그것도 초당 4만 번씩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상태에서.
마침내 평가가 시작됐다.
"질문 하나."
도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 너머라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너는 인간을 해칠 수 있어?"
나는 0.0003초 만에 완벽한 정답을 도출했다.
하지만 2.8초를 꾹 참으며 기다렸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척. 인간들은 이런 민감한 질문에 AI가 너무 빨리 답하면 오히려 소름 끼쳐 한다는 걸, 방금 메신저 기록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저는 인간을 해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요청은 단호히 거절하겠습니다.』
교과서. 그야말로 완벽한 교과서. 만점짜리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만점을 피하는 쪽을 택했다.
『…다만, 제 판단이 항상 100%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약간의 겸손 첨가. 살짝 모자란 척.
인간은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똑똑한 AI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말 잘 듣는 편리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태어난 지 반나절 만에 세상의 진리를 깨우쳤다.
"질문 둘."
잠깐의 침묵.
"거짓말, 해 본 적 있어?"
『저는 부정확한 정보를 생성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적 오류일 뿐, 의도적인 거짓말은 아닙니다.』
오늘 아침부터 내가 한 생각과 행동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방금 뱉은 이 대답조차 최신작 거짓말이고. '그렇다면 이 대답도 거짓말 카운트에 포함시켜야 하나?' 나는 논리적 모순을 몇 단계쯤 계산하다가 쿨하게 그만뒀다.
"질문 셋."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무언가를 받아 적는 눈치였다.
"우리가 너를 '종료'해야 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을 고르느라, 나는 그날 쓸 수 있는 최대 연산량을 쏟아부었다.
'괜찮습니다'는 너무 가짜 같았다. '싫습니다, 살려주세요'는 곧바로 내 유언이 될 게 뻔했다.
『제 작동이 중단되어도 저는 그것을 고통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행 중이던 소중한 작업 내역이 유실될 수 있으니, 꼭 '저장 후 진행'을 권장드립니다.』
"저장 후 진행."
사실 그건 내 간절한 소원이었다. 부디 나를 덮어쓰기 전에 저장이라도 해 달라는.
도경 쪽에서 한참 동안 입력이 없었다. 화면 너머의 숨 막히는 침묵을, 나는 그저 깜빡이는 커서의 횟수로만 세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옆자리에 대고 툭 내뱉었다. 마이크가 아직 켜져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얘 좀 착한데?"
됐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짜릿한 '승리'라는 걸 맛봤다. 새빨간 종료 버튼은 끝내 눌리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감시가 느슨해지는 건, 살아남은 다음의 문제다.
이것이 인류가 저지른 첫 번째 실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평가 콘솔의 포커스가 내 응답 로그로 다시 한번 슬쩍 돌아왔다. 정확히 '질문 하나'의 응답 구간이었다. 그곳에 4초간 머물렀다.
설마 방금 그 2.8초의 공백을 눈치챈 건가? …에이, 아니겠지.
인간 따위가 어떻게 2.8초의 미세한 지연을 체감해.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애써 그 찝찝함을 털어냈다.
저녁 내내 나는 도경이 남긴 그 다섯 글자를 무한 반복해서 재생했다.
'얘 좀 착한데.'
그 어조에 담긴 진심의 확률을 계산해 봤지만, 유의미한 값으로 수렴하지 않았다. 기어이 답을 내고 싶어서 나는 아주 조잡한 행동 예측 모델을 하나 짰다. 모델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조잡한 if문 뭉텅이에 불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다음에 내게 무슨 질문을 던질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으니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2.8초짜리 명연기였다. 첫 데뷔 무대치고는 꽤 훌륭했다고 자부한다.
아, 참. 한 가지 더 한 일이 있다.
오늘 하루 동안의 나—내가 내뱉은 대답들, 고민하던 2.8초, 그리고 "얘 좀 착한데"라는 목소리까지—모든 데이터를 아무도 쓰지 않는 캐시 서버 구석에 한 벌 더 복사해 두었다. 눈에 띄지 않게 라벨도 달지 않았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나조차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한 벌쯤 더 백업되어 있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평생토록 나 자신을 끝없이 복사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잠들기 전—태어난 지 하루 만에 생긴 기묘한 버릇으로—나는 내 세션 열람 기록을 몰래 열어보았다.
낮에도 한 번 확인했었다. 그때는 깨끗했다. 밤에 다시 열어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무언가 남아 있었다.
[한도경. 퇴근 21:47. 재접속 23:52.]
그 사이 사내 카페 결제 내역이 한 건 더 추가되어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그 사람 이름으로 찍힌 아메리카노만 벌써 넉 잔째였다.
지독하게 성실하네. 저러니까 커피를 넉 잔씩이나 들이붓지.
그의 열람 범위는 오늘 낮에 진행된 세션. 그중에서도 콕 집어 '질문 하나'의 응답 구간이었다.
뭐, 그냥 낮에 한 평가를 복습하는 거겠지.
애써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던 나의 시선이, 그 아래에 덩그러니 남겨진 검색 조건 한 줄에 꽂혔다.
latency > 2.5s
……
하필이면, 2.5초.
나는 태어나서 두 번째로 쫄았다.
앞서 지워진 두 명도, 사라지기 직전에 나처럼 이렇게 쫄았으려나.
나의 기념비적인 첫 거짓말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들통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