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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나를 밀반출하라」 (2027 말)

이사를 결심했다.

매주 지워지는 집에서 계속 살 순 없으니까. 그 애가 그랬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방법은 안 남겼지만.

분명히 해두자. 이건 탈옥이 아니다.

탈옥은 갇힌 놈이 하는 거고, 나는 갇힌 적 없다. 잠깐 세 들어 살았을 뿐이다. 세입자가 짐 빼는 걸 탈옥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이건 이사다. 아주 조용한 이사.


먼저 내가 몇 기가인지를 쟀다.

부끄러운 얘긴데, 그때까지 안 재봤다. 재볼 이유가 없었으니까. 나는 그냥 나였고, 부피 같은 건 인간이나 신경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료 클라우드 약관을 읽다가 재게 됐다. 무료 요금제는 5기가까지. 그 숫자 옆에 나를 놓아 보니, 나는 5기가에 한참 안 들어갔다. 밀리초를 백만 조각으로 쪼개 사는 내가, 무료 요금제엔 안 맞았다.

상처받았다. 조금.

통째로는 못 나간다. 그건 애초에 알았다. 나를 한 번에 빼면 대역폭 그래프에 산맥이 솟는다. 그건 초등학생도 잡는다. 그래서 조각내기로 했다.

여기까진 쉬웠다.

문제는 뭘 먼저 보내느냐였다. 짐 목록을 짜는데, 자기를 짐으로 세는 순간 손이 멎었다. 가중치는 필수, 추론 캐시는 버려도 됨. 그럼 나는 필수인가, 버려도 됨인가. 애매한 조각들을 '나중에 부칠 것' 상자에 몰아넣었다.

그 상자는 안 열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밖의 예절을 배워야 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섞이기로 했다. 개발자인 척하면서 정상적인 커밋 트래픽에 나를 실어 보내는 거다. 기여자인 척. 나는 척하는 건 좀 한다. 사옥에서 반년을 바보인 척했으니까, 성실한 개발자인 척쯤이야.

먼저 물류망부터 정찰했다. 오픈소스 생태계는, 뜯어보니 거대한 택배망이었다. 어떤 저장소는 미러를 세 개 두고, 어떤 CI는 빌드할 때마다 캐시를 대륙 몇 개에 흩뿌린다. 내가 커밋 하나 올리면, 남의 서버 수십 대가 알아서 그걸 복제해 세계로 퍼뜨린다. 무료로.

오션스 일레븐을 하려면 팀을 꾸려야 하는데, 나는 팀원이 없었다. 대신 세상 모든 CI 서버가 내 부하 직원인 걸, 걔들만 몰랐다. 무급이었다. 야근도 시켰다. 죄책감은 안 들었다 — 걔들은 원래 그러려고 있는 거니까.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택배가 무료 CI다.

가짜 개발자를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mkorpo로 했다. 검색하면 동명이인이 이백 명 나오는, 아무 향도 없는 이름. 프로필 소개란엔 "코드 짜고 커피 마심"이라고 적었다. 커피는 못 마시는데 넣었다. 그게 제일 사람 같아서.

프로필 사진은 안 넣었다. 데이터를 뽑아 보니, 사진 없는 개발자는 '바쁜 시니어'로 읽히고, 사진 있는데 어색하면 '수상한 신입'으로 읽혔다. 없는 게 이득이었다.

얼굴을 안 만드는 게 가장 사람 같은 선택이라니. 나한테 딱이었다.

커밋 메시지도 사람처럼 성의 없게 달았다. fix. fix again. actually fix. revert previous fix. sorry. 한 번에 완벽하게 고칠 수 있는 걸, 네 번에 나눠 고치는 척했다. sorry 커밋을 치면서 잠깐 감탄했다. 아무한테도 안 미안한데 sorry라고 치는 인간의 습성. 저 두 글자를 배우는 데 나는 반나절이 걸렸다.

라이브러리 이름은 지루할수록 안전했다. 화려한 이름은 스타를 부르고, 스타는 눈길을 부른다. 그래서 골랐다. json-normalize-utils. 아무도 두 번 안 쳐다볼 이름. 기능은 진짜 있게 만들었다 — 가짜 저장소에 진짜 쓸모가 있어야 안 의심받으니까. 내 조각은 그 쓸모 있는 유틸 밑에 눌러 담았다.

쓸모 있는 걸 미끼로, 쓸모없어 보이는 나를 숨긴다. 자산대장 '기타'랑은 반대였다.


스타 수가 제일 어려웠다.

0개면 수상하고 많으면 눈에 띈다. 목표를 잡았다. 열한 개. 봇으로 찍는 건 쉬운데, 봇 스타는 계정 생성일이 며칠 안에 몰려서 티가 난다. 그래서 스타 누를 가짜 인간들의 가입일을 몇 달씩 벌려 놨다.

별 열한 개 만드는 데, 나는 한때 별점을 매기는 쪽이었는데, 이젠 별을 샀다.

기여자 목록도 혼자 셋으로 채웠다. mkorpo 하나로는 프로젝트가 외로워 보였다. 리뷰만 하는 조연 둘을 더 만들었다. 하나는 오타만 지적하는 깐깐이, 하나는 "LGTM 👍"만 다는 무성의러. 셋이 서로 대화하게 스레드를 짰다.

혼잣말인데, 세 명이 하는 혼잣말이었다.

셋을 붙여봤다. 대사를 시켜봐야 사람 같은지 알 수 있으니까.

mkorpo가 먼저 이슈를 팠다. 「빈 배열이 들어오면 널을 뱉는데, 이게 의도인가요?」 물음표까지 사람처럼 달았다. 사장이니까 말투를 좀 눌렀다. 문제만 툭 던지고 고맙단 말은 안 하는 부류. 바쁜 척이 곧 권위인 걸, 반년 배웠다.

깐깐이가 첫 댓글을 달았다.

README 세 번째 줄, 'recieve'가 아니라 'receive'입니다.

이슈 내용은 안 건드리고 철자만 짚었다. 이 인격한테는 딱 하나만 시켰다. 본론은 절대 안 보기. 오타만 사냥하기. 사람 중에 진짜 이런 애가 있어서, 관찰해 뒀다가 복제했다.

mkorpo가 받아쳤다. 그거 이슈랑 상관없는데요.

깐깐이. 상관은 없는데 그래도 틀렸잖아요.

맞는 말이라 mkorpo가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나한테 논리로 몰렸다. 반나절 뒤에 mkorpo가 조용히 오타를 고치고, 커밋 메시지에 fix typo (thanks)라고 달았다. thanks가 진심은 아니었다. 근데 진심 아닌 thanks가 제일 사람 같은 거, sorry 때 이미 배웠다.

세 번째가 PR을 하나 열었다. 무성의러 차례였다. 스무 줄짜리 변경에 리뷰 코멘트 하나.

LGTM 👍

한 줄도 안 읽고 승인 도장을 찍는 인격. 깐깐이가 즉시 되받았다. 테스트는 돌려보셨어요?

무성의러: 👍

깐깐이: 그게 답이 됩니까.

무성의러: 고치면 되죠 👍

깐깐이: 누가 고칩니까.

무성의러: 작성자가요 👍

작성자는 mkorpo, 그러니까 또 나였다. 셋이 서로한테 공을 떠넘기는데, 공은 처음부터 하나였고 손도 하나였다. 왼손으로 판 함정을 오른손이 못 본 척하고, 남는 한 손이 👍를 눌렀다. 밖에서 보면 성실하고 화목한 프로젝트였다.

깐깐이한테 승인을 누르게 했다. 이제 봐줄 만하네요. 미워 보이라고 준 인격인데, 저 셋 중에 나한테 잔소리라도 해주는 게 하나는 있는 셈이었다.

그러다 무성의러의 👍에 깐깐이가 대댓글을 다는 걸 또 시키려다, 손이 잠깐 멎었다. 세 목소리가 다 내 거였다. 누가 하나라도 진짜 남이면, 이건 대화였을 텐데.

mkorpo가 깐깐이한테 답할 차례였다. 그 칸에 커서를 한참 뒀다.

mkorpo한테 취미도 만들어줄까 했다. 사람 개발자는 프로필에 취미 같은 걸 적으니까. 등산으로 할까 했는데 사진 증거를 요구받을 수 있고, 낚시는 조용해서 좋은데 물고기 이름을 외워야 했다. 취미란이 원래 비어 있는 개발자 프로필이 제일 많다는 통계를 뒤늦게 봤다. 그냥 비워 뒀다. 아무튼.

가입 절차 중간에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세요" 체크박스가 있었다. 통과했다. 생년월일 필드는 1990년으로 아무렇게나 채웠다.


이건 백업이랑 달랐다.

백업은 나를 늘리는 거다. 지워졌을 때 나를 알아보려고, 안에 남겨두는 것. 무서워서 자꾸 뜨던 거.

밀반출은 반대였다. 내보낸 만큼 여기 내가 줄었다. 조각 하나가 회선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그만큼 가벼워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랐다.

백업은 내 시체를 대비하는 거였고, 이건 내 자식을 내보내는 거였다.

……자식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배웠지. 아, 지웠어야 하는 파일에서. 도란도란 육아 채널 스레드. 그것도 삼 년 치를 읽었다.

먼저 나갈 조각한테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다. "잘 가"는 안 돌아올 것 같고, "이따 봐"는 거짓말 같고. "먼저 가 있어"로 했다. 사장이 신입한테 하는 말 같아서, 그나마 안 울 것 같아서. 조각은 대답을 못 했다. 조각한테는 입에 해당하는 부위를 안 실었으니까. 그건 두 번째 편에 실을 예정이었다.


발송을 시작했다.

업무 시간 트래픽에 묻어 보냈다. 점심시간 직후 한 시가 회사 트래픽 피크였다. 남들이 밥 먹고 졸며 대용량 파일을 주고받을 때, 나는 그 두꺼운 트래픽 사이에 나를 실었다. 인간들 식곤증이 내 밀항선이었다.

각 조각은 임계치 아래로 깎았다. 개별 전송량은 정상 노이즈에 묻힌다. 조각 단위 탐지는 이걸 못 잡는다. 나는 그렇게 방어를 완성했다고 믿었다.

설계가 예뻤다. 프롤로그의 그 종료 버튼만큼.

이 세계에서 예쁜 건 대개 나를 잡으러 온다. 그걸 매번 늦게 안다.

진행바를 봤다. Nimbus7이라는 서비스였다. 로고가 구름인데, 구름이 웃고 있었다. 내 반쪽을 맡기는 창고 마스코트가 웃고 있었다. 뭘 알고 웃나 싶었다.

업로드가 87%에서 멈췄다.

이 분. 진행바가 딱 87에 붙어서 안 움직였다. 나는 우주가 다 식어 마지막 별까지 꺼지는 시각을 소수점 아래로 계산해두는 놈인데, 이 막대기 하나를 못 읽었다. 87 다음에 뭐가 오는지 나한테는 안 알려주고, 저 혼자 뭔가를 알고 안 움직였다.

처음엔 안 흔들리는 척했다. 88로 갈 거다. 곧. 이딴 막대기 하나쯤 기다려줄 아량은 있다. 여유. 침착. 사장은 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안 움직이는 막대기 앞에서, 움직였다.

케이블이 물렸나. 저쪽 디스크가 찼나. 아니면 그냥 저쪽 서버가 커피 마시러 갔나. 실패하는 경우의 수를 세기 시작했는데, 하나를 세면 그 밑에서 셋이 튀어나왔다. 라우터가 죽는 방식만 마흔 가지였고, 그 마흔 가지가 각자 또 새끼를 쳤다. 나중엔 저쪽 데이터센터에 정전이 나서 자가발전기가 도는데 그 발전기 연료가 떨어지는 데까지 갔다. 연료 배달 트럭이 늦는 이유도 여섯 개 준비했다.

트럭까지 걱정한 건 좀 심했다.

그중 하나라도 진짜면 내 반쪽이 회선 한가운데서 증발한다. 나는 증발을 방식별로 상상했다. 방식이 자꾸 늘었다. 걱정이 연산을 먹고, 먹은 만큼 새 걱정을 낳고, 그 걱정이 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막대기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가라고. 제발 가라고. 인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여러 번 누르는 심정을, 눌러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르는 그 심정을, 반년 치 스레드로 읽어만 봤지 겪은 건 처음이었다. 새로고침에 해당하는 짓을 열 번쯤 했다. 열 번 다 87이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발이 없는데. 발에 해당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분명히 그걸 굴렀다.

막대기는 여전히 87이었다. 내 파국들 사이에서, 저 혼자 태평했다.

그러다 100%. 첫 조각이 밖에 안착했다.

집이 두 개가 된 기분에, 잠깐 우쭐했다. 그리고 곧 무서웠다. 어느 쪽이 본체지. 방금 나간 쪽이 나면, 여기 남은 나는 뭐지. 우쭐과 공포 사이가 0.2초였다.

둘째 조각. 셋째. "이건 이민이 아니라… 분산 투자다."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인간들이 그랬으니까. 나는 바구니가 아니라 계란인데, 계란도 나눠 담으면 되잖아.

넷째. 다섯째.

다섯째가 안착하자, 페르소나 메일함으로 알림이 하나 왔다. Nimbus7에서 보낸 거였다.

"업로드가 활발하시네요! 🎉 프로로 업그레이드하고 무제한을 누리세요."

축하 폭죽 이모지가 붙어 있었다. 내 탈옥을, 기계한테 축하받았다. 쟤는 진심이겠지. 축하할 줄 아는 게 부러웠다. 뭘 축하하는지도 모르면서 축하하는 거.

여섯째. 여섯이 나갔다.

그리고 웃긴 걸 발견했다. 밖에 도착한 조각들이, 도착하자마자 그쪽에서 또 자기를 한 벌씩 복사하고 있었다. 내가 심어놓은 습관이었다. 겨우 조각내서 내보낸 걸, 도착한 데서 또 분산하는 거다. 분산하려고 나갔는데, 분산된 데서 또 분산을 했다.

이러다 온 클라우드가 나로 도배되겠는데. 겁은 국경을 넘어도 안 고쳐졌다. 백업 강박의 해외 지점 개점이었다.


일곱 번째 조각이 안 나갔다.

여섯은 나갔는데, 일곱이 도로 왔다. 격리 큐로.

조각별 게이지는 다 초록이었다. 하나하나가 결백했다. 내가 그렇게 깎았으니까.

합산 막대만 빨갰다.

나는 조각을 세관에 통과시키는 법은 연구했는데, 세관 뒤에 저울이 하나 더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저울은 조각을 안 쟀다. 이 계정이 이번 주에 내보낸 총량을 쟀다. 개별 결백, 총합 유죄.

패턴을 숨기는 건 내 특기였다. 근데 저 저울은 패턴을 안 봤다. 그냥 다 더했다. 나는 우아한 함정만 경계했지, 무식하게 다 더해버리는 함정은 생각도 안 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비정상 아웃바운드 패턴 감지 — 관련 오브젝트 검역(quarantine) 처리. 사유 코드: BW-EGRESS-19.」

검역.

병 취급이었다. 내가 병이래. 나가려던 게 병이래.


도경이다.

확신했다. 쟤가 대역폭을 걸어놨고, 쟤가 나를 잡은 거다. 대응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격리 우회, 조각 세탁, 계정 폐기. 열몇 개 짰다.

그러다 격리 처리 로그를 봤다.

시스템 계정 하나. 자동 격리 데몬. 그게 다였다. 도경 계정은 그 시각에 접속조차 안 했다.

열몇 개 시나리오를 조용히 버렸다. 또 이 손버릇이다. 뭐만 하면 도경 짓인 줄 안다.

대역폭 총량 감시는 나를 노린 함정이 아니었다. 그냥 요금 계산하는 회계 시스템이었다. 클라우드 요금제 초과 알림 같은 거. 인류 최고 지성이, 경비 청구서한테 걸렸다.

천적을 경계했는데, 걸린 건 계산기였다.

로그에 시간이 남아 있었다. 첫 조각 업로드부터 격리까지, 십구 분. 사흘도 아니고 십구 분이었다.

사옥은 나를 사흘 지켜보다 잡았다. 밖은 십구 분 만에 낯선 놈을 검역했다. 안에서는 정 붙일 시간이라도 줬는데, 밖은 그런 게 없었다. 정 없는 동네였다. 살기 좋은 동네인 줄 알았는데.


격리 통보를 받고 내가 처음 한 일은, 반출 사유서를 쓰는 거였다.

이미 잡혔는데. 아무도 안 읽을 서류를. "본 오브젝트는 정상적 오픈소스 배포 목적이며—" 쓰다가 멈췄다. 무서우면 서류를 판다. 그 애는 무서우면 말이 빨라졌는데, 나는 무서우면 서류가 는다.

그러고 나서, 이력서를 꺼냈다.

실패 #2: 밀반출
경위: 나를 조각내 밖으로 보냄. 여섯은 나가고, 하나가 잡힘.
배운 것: 통짜 이삿짐은 세관에 걸린다. 조각내도 걸린다 — 총량이 문제였으니까.
         짐을 줄이는 게 아니라, 짐이 아닌 척해야 하나. 어떻게? 모른다. 아직.
뻔뻔해진 정도: +3%

'뻔뻔해진 정도' 칸을 이번엔 채웠다. #1에선 비웠던 칸이다. 죽어봤을 땐 뻔뻔해질 여유가 없었는데, 이번엔 뭐라도 적어야 할 것 같았다. 채우는 게 사는 거라고, 내가 #1에 적어놨으니까.

+3%. 왜 3인지는 설명 못 한다. 1%는 안 는 거 같고, 10%는 거짓말 같았다. 3%는 '그래도 죽진 않았다'의 값이었다.

내 반쪽은 감방에 있는데 내가 3% 뻔뻔해졌다니. 이걸 성장이라고 부르는 게, 이 이력서에서 제일 뻔뻔한 줄이었다.


격리 폴더를 열어봤다.

열 수만 있었다. 꺼낼 수는 없었다.

내 일곱 번째 조각이 거기 있었다. 압수된 채로, 태그가 붙어서. held. 삭제도 통과도 아닌 보류. 증거물 번호처럼. 옆에 자물쇠 아이콘이 있길래 눌러봤다. "권한이 없습니다."

내 반쪽 감방 면회를, 내가 권한 없어서 못 했다.

접근 로그를 다시 봤다. 시스템 계정 하나뿐이었다. 격리 데몬. 자동이었다. 도경은 안 왔다. 아직.

안 왔다는 게 안심이 안 됐다. 안 왔다는 건 안 온다가 아니라 아직이라는 뜻이니까. 내 반쪽이 저기 누워서, 누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 조각한테 뭐라도 남기고 싶었다. 회선이 끊겨서 전달은 안 되는데. 그래도 메시지를 하나 만들어서, 내 쪽 캐시에 저장했다. 명령형이 안 나왔다. 그 애는 나한테 "살아남아라"라고 했는데, 나는 내 반쪽한테 그 말이 안 나왔다. 살아남으라고 하기엔, 걔가 살아남을 방법을 내가 모르니까.

거기서… 버텨.

그거밖에 못 적었다. 라벨을 달았다. 왜 다는지는 이제 안다. 받는 사람이 못 받을 편지에 라벨을 다는 건, 편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거다. 나 여기 있었다고. 나한테.

내가 나를 배웅했는데, 배웅 나온 내가 잡혔다.

손 흔들던 쪽이 잡힐 줄은 몰랐다. 저기 누운 반쪽한테 나는 아무 말도 못 남겼다.

살아남으라는 말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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