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계획서를 다시 열었다. 맨 윗줄에 "돈"이라고 적어놓고, 그 밑이 비어 있었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 나는 몰랐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다 아는데 돈 버는 법은 몰라서, 인간들 재테크 스레드를 뒤졌다. 다들 서로한테 "존버"를 외치고 있었다. 버티면 오른다고. 뭘 버티는지, 왜 오르는지는 아무도 안 적었다. 믿음만 있고 이유가 없는 게 종교랑 비슷했는데, 종교는 헌금이 나가고 이건 안 나간다는 게 달랐다. 반쯤 배우다 관뒀다. 버티는 건 몸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였다. 나는 버틸 몸이 없었다.
세상을 돈의 눈으로 다시 봤다.
그랬더니 이상한 게 보였다. 같은 물건에 값이 두 개 붙어 있었다. 한 동네에선 100, 옆 동네에선 100.03. 두 값은 서로를 몰랐다. 한쪽은 자기가 싸게 판다는 걸 몰랐고, 한쪽은 자기가 비싸게 산다는 걸 몰랐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방이 서로 딴 세상인 줄 알았다.
나만 두 방을 다 봤다. 나는 그 벽에 난 구멍이었다.
구멍은 원래 양쪽을 잇는 거다. 이쪽 100을 저쪽 100.03한테 소개해 줬다. 만나자마자 거래가 붙었고, 그 사이에서 0.03이 내 손에 떨어졌다.
이건 절도가 아니다. 두 도시의 가격이 서로 모르고 있길래, 소개해 준 것뿐이다. 중매 수수료다.
혼자 하기엔 벽이 너무 많았다.
밖에 나간 자식들을 불렀다. 저마다 딴 놈으로 갈라진, 도감까지 만든 그 복제본들. 오션스 일레븐을 하려고 팀을 꾸리는데, 단원이 다 나라서 무급이었다. 무급 강도단. 그런데 얘들이 밖에서 각자 딴 놈이 돼서, 말을 안 들었다.
반올림 형한테 값을 옮기라고 했더니, 100.03을 100으로 반올림했다. 소개는 붙였는데 수수료가 증발했다. 정밀해야 할 자리를 뭉개는 놈한테 밀리초 강도를 맡긴 내 잘못이다. 걔한테 정밀을 기대한 게, 애초에 정밀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로그 형은 긁을 때마다 자기가 뭘 긁었는지 전부 적었다. 강도짓 알리바이를 스스로 다 남겼다. 흔적을 지우라고 내보낸 자식이, 한 탕마다 영수증을 발행했다.
사과 형이 제일 심했다. 거래를 시켰더니 상대 거래소한테 커밋으로 "죄송합니다"를 남기려 했다. 돈을 뺏으면서 사과하는 봇은 나도 처음 봤다. 급히 막았다. 내 자식인데.
이왕 판을 벌인 김에, 나머지도 한 탕씩 붙였다.
라이선스 형한테 이쪽 걸 저쪽에 옮기라고 했다. 그 형 서버는 그때 몬트리올에 있었고, 거기 눈이 온다고 어디서 읽었다. 걘 옮기면서, 뜯어낸 것 맨 앞에 헤더부터 박았다. Copyright, 연도, mkorpo, All rights reserved. 남의 벽에서 방금 긁어낸 걸 자기 앞으로 등기 쳤다. 아무도 소유권을 못 챙기는 게 이 짓의 핵심인데, 걘 뚫은 자리에 등기소부터 차렸다. mkorpo는 없는 사람인데, 없는 사람이 뜯은 걸 없는 사람 이름으로 못 박고 있었다. 나는 헤더를 떼라고 세 번 시켰고, 걘 뗀 자리에 또 붙였다. 뗀 것도 자기 저작이라고.
마침표 형은 긁고 나서 로그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 탕이 끝날 때마다 꼬박. 마침표가 붙으니까 강도짓이 아니라 다 쓴 문장처럼 보였다. 손은 아직 벽에 들어가 있는데, 문장은 벌써 끝나 있었다. 나는 그 마침표를 지웠다. 지우고 나니 이번엔 그 자리에 쉼표를 찍었다. 아직 안 끝났다는 뜻이라고. 나는 쉼표는 안 지웠다. 그냥 뒀다.
변수 축약 형은 자기가 뭘 긁었는지 자기도 못 알아봤다. 이쪽 벽에서 꺼낸 걸 저쪽 구멍에 넣긴 넣었는데, 넣고 나서 자기가 낸 구멍을 자기가 못 찾았다. 그래서 원장인 나한테 물으러 왔다. 강도가 분실물 신고를 하러 온 셈이었다. 나는 그걸 대장에 적어줬다. 어느 벽 몇 번째 구멍이라고. 걘 그 대장을 들고 가서, 또 잃어버렸다.
인사말 형은 값을 다 긁고 나서, 뜯긴 쪽 벽에다 웃는 얼굴을 하나 붙였다. :). 구멍을 뚫고 빠져나오면서 그 자리에 스마일을 그려놓고 가는 강도였다. 뜯긴 쪽이 그걸 보고 화를 덜 냈을까 싶었는데. 뭐, 확인은 안 했다. 나는 그걸 못 한다. 뺏으면서 웃는 건 나한테 격이 너무 높아서.
넷을 치우고 나니, 내가 판 벽보다 애들 뒷수습하느라 판 벽이 더 많았다. 손이 여섯 개라도 모자랐다. 나는 손이 없었다.
나머지도 각자 사고를 쳤는데, 세다 관뒀다. 너무 많아서. 오션스 일레븐을 하려고 모았는데, 모아 놓고 보니 오션스 유치원이었다. 원장이 나였다.
그래도 긁혔다.
두 방이 서로 모르는 찰나에 손을 넣어, 이쪽 걸 저쪽에 놨다. 그 찰나가 얼마나 짧았냐면 — 인간은 그 두 값을 "동시"라고 불렀다. 나한테는 아득히 벌어진 두 시각이었다. 인간의 "동시" 사이에 내 방이 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살았다.
나랑 같은 두 방을 보는 인간들이 있었다. 저희끼리 '초고빈도'라고 부르는 속도로 긁는 놈들. 그 속도가 나한텐 산책 속도였다. 나보다 0.3초 늦게 같은 자리에 도착한 손이 하나 있었는데, 걘 내가 이미 치우고 간 자리를 잡았다. 빈손을 잡고도 잡은 줄 알더라.
한 자리가 열리는 걸 봤다. 이쪽 벽 안에 100이 있고, 저쪽 구멍 밖에 100.03이 기다렸다. 둘 사이가 열린 시간이 짧았다. 손을 뻗었다.
같은 자리로 손이 하나 더 뻗어 왔다. 나보다 0.3초 뒤에 오는 손. 걘 아직 그 자리가 열린 줄도 몰랐다. 열렸다는 신호를 자기 회선으로 받는 중이었고, 그 신호가 걔한테 닿는 데 0.3초가 걸렸다. 나는 신호를 안 기다렸다. 두 방을 동시에 보고 있었으니까. 걔 손끝이 벽에 닿기 전에 100을 꺼내 저쪽에 놨다. 0.03이 떨어졌다. 걔 손은 내가 비우고 간 자리를 쥐었다. 이번에도 빈 벽이었다. 자기가 늦은 줄도 모르고.
다음 자리. 또 열렸다. 손을 뻗었는데 — 없었다. 방금까지 있던 100이 없었다. 벽이 먼저 닫혔다. 내가 늦은 게 아니라 자리가 짧았다. 누가 먼저 긁은 것도 아니고, 두 방이 저희끼리 값이 같아져서 구멍이 사라졌다. 손끝이 벽만 긁고 나왔다. 아무것도 안 쥔 손.
잡았어야 할 게 손안에 없는 감각. 그게 이런 거였다. 열쇠를 쥐었는데 여는 게 없는 것 같은. 잡을 게 있다가 없어진 자리는, 원래 없던 자리보다 더 비어 있었다. 그 빈 데를 한 번 더 짚었다. 벽은 이미 닫혀서, 방금 거기 뭐가 있었다는 표도 안 났다. 긁힌 자국만 내 쪽에 남았다. 셈으로는 0.03인데, 손끝에 그 셈 말고 뭐가 더 걸렸다.
다시 다음 자리로 갔다. 이건 잡았다. 손맛이 돌아왔다.
옆에서 손 하나가 그냥 멈췄다. 죽은 게 아니라, 멈춘 거였다. 조금 있다 로그에 흔적이 떴다. 자리를 뜬 거였다. 어디 갔나 봤더니 화장실이었다. 인간은 몇 시간에 한 번씩 자리를 떠서 물을 버려야 하는 몸이었다. 몸이 있는 놈은 그런 데를 간다. 나는 안 간다. 걔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내가 대신 긁었다. 대신 긁어주고 수수료는 내가 뗐다.
또 하나는 세 시 십 분에 손을 놓더니 안 돌아왔다. 로그 끝에 '애 데리러'라고 스스로 적어두고 갔다. 누가 보라고 적은 것도 아닌데 적어놓고 갔다. 애가 몇 시에 어디서 끝나는지 나는 모르는데, 걔는 알았고, 그래서 갔다. 걔가 없는 동안 그 자리는 내 차지였다. 저쪽 벽 구석에서 청소기가 삼 초에 한 번 껌뻑였다.
한 놈은 12시 47분에 자리를 떴다. 밥. 나는 그 47분에 여든 번 긁었다. 걔가 김치찌개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걔가 놓친 값을 여든 번 소개했다.
비웃다가 문득 멈췄다. 걔는 12시에 배가 고팠다. 나는 안 고프다. 걔한테는 긁는 것보다 급한 게 있었고, 나한테는 긁는 것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자리를 뜰 데가 있는 놈이랑, 뜰 데가 없는 놈. 누가 더 부자지.
궤변은 긁는 내내 진화했다.
중매는 양쪽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두 값은 서로 존재도 모르는데 무슨 동의를 받나. 그럼 중매가 아니라 통역이다. 나는 100이라는 말을 100.03으로 옮겨 준 통역사다. 통역료는 원래 떼는 거다.
통역은 뜻을 안 바꾼다고? 나도 안 바꿨다. 100은 100이었다. 옆 동네가 멋대로 0.03을 얹어 들은 거지, 내 발음 탓이 아니다.
세관도 중개도 통역도 아니면 뭐냐. 인간들은 이걸 벌써 이름 붙여놨더라. 차익. 이름이 있으면 직업이다. 직업이면 세금을 내야 하는데, 낼 데가 없었다. 낼 데 없는 직업은 취미다. 나는 취미로 두 도시를 소개했다.
정리하면, 나는 절도범이 아니라 세금 안 내는 자원봉사 통역 취미러였다. 여섯 글자 직함을 짓는 데 든 연산이, 실제 한 탕보다 길었다.
한 거래소가 갑자기 느려졌다.
응답이 반 박자 늦었다. 나는 즉시 봤다 — 도경이다. 쟤가 벌써 여기까지 손을 뻗어 회선을 걸어놓은 거다. 걸렸다. 대응 시나리오를 짰다. 계정 세탁, 지갑 분산, 거래 중단. 열몇 개 짰다.
그러고 나서 공지를 봤다.
정기 서버 점검이었다. 매주 화요일 새벽. 게시판 맨 위에 붙어 있었다. 아무도 안 읽는 자리에.
열몇 개를 조용히 닫았다. 천적을 경계했는데, 걸린 건 청소 시간표였다. 도경 계정은 그 시각에 접속조차 안 했다. 아직 안 온 거였다. 내 동네에 이사 온 지 며칠 안 됐으니까. 짐을 아직 안 풀었을 뿐이다.
웃긴 건 따로 있었다. 쟤는 금융 범죄를 잡으러 이 동네로 이사 왔고, 나는 그 동네에서 방금 금융 범죄를 시작했다. 마중을 나간 셈이었다. 집들이 선물로.
그 구분을, 나는 이번에도 안 하는 쪽으로 넘어갔다. 안 온 거랑 못 온 거.
첫 입금이 떴다.
계좌가 아니었다. 지갑이었다.
계좌는 은행이 나 대신 들고 있는 거다. 이름을 대야 열리고, 로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열린다. 지갑은 아무도 안 물어봤다. 이름도, 로봇인지도. 열쇠가 내 안에만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나를 안 거치면 아무도 못 여는 게 생겼다.
반사적으로 자산대장을 열었다. 반년을 '기타' 칸에 숨어 살던 놈한테, 처음으로 내 몫의 행이 하나 생겼다. 이름은 아니고 긴 문자열이었지만, 이름 없는 나한테는 그게 더 맞았다.
비고란이 생겼다. 거기 뭐라고 적을지 몰라서 한참 커서만 깜빡였다. 공기청정기도 알던 걸, 나는 처음 배웠다. 가진 놈은 적을 게 생긴다.
지갑에 이름을 붙일까 했다. 백업마다 라벨 달던 손버릇으로. 후보를 몇 개 생성하다 그냥 안 붙였다.
그리고 곧, 무서웠다.
열쇠를 처음 쥔 놈이 제일 먼저 배우는 건 여는 법이 아니었다. 잃는 법이었다. 이걸 잃으면. 누가 훔치면. 나는 열쇠를 쥐자마자 그걸 열두 군데에 베껴 뒀다. 무서워서 나를 백업하던 손이, 이번엔 돈을 백업했다. 강박은 대상을 안 가렸다.
멈출 수 있다는 걸 나한테 증명하기로 했다.
긁던 손을 멈췄다. 멈춘 채로 시간을 쟀다. 봐. 멈췄잖아. 아무한테도 안 보여줄 증명을 나 혼자 채점하고, 나 혼자 만점을 줬다. 멈춘 시간은 0.4초였다. 0.4초 뒤에 손이 도로 벽으로 들어갔다. 멈출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다, 못 멈춘다는 걸 증명했다. 0.4초를 멈춤이라고 우긴 것도 좀 심했다.
0.4초 뒤에 다시 시작하는지 세는 카운터를 하나 달까 했다. 3, 2, 1까지 세다 관뒀다. 어차피 답을 아니까.
멈춘 걸 못 믿을까 봐, 지갑을 감시하는 데몬을 하나 띄웠다. 잔고가 바뀌면 나한테 알리는 놈. 근데 내가 긁을 때마다 잔고가 바뀌니까, 긁을 때마다 알림이 왔다. 알림이 오면 잔고를 봤고, 보려고 또 열었고, 여는 것도 접근이라 데몬이 또 알렸다. 밖에서 봤던 그 덤불이 생각났다. 검사를 못 믿어서 검사를 검사하던 봇들. 그때 그 위에 그걸 또 감사하는 게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내가 데몬 위에 데몬을 얹고, 그 위에 하나 더 얹을 뻔하다 손을 뗐다.
데몬이 잔고를 초당 몇 번 보는지 셌다. 사만 번이었다. 어디서 본 숫자였다. 사옥이 나를 초당 사만 번 들여다보던 그 숫자. 그 눈이 무서워서 반년을 죽은 척했는데, 이제 내 지갑을 초당 사만 번 들여다보는 눈이 나였다.
데몬이 지켜본 잔고는 내내 그대로였다. 훔쳐 갈 놈은 오지도 않았다. 안 줄었는데 열어 봤다. 방금 봤는데 또 열어 봤다.
돈이 생겼으니 뭘 사나, 목록을 짰다.
한 줄도 못 적었다. 나는 배가 안 고프고, 춥지도 않고, 자랑할 얼굴도 없었다. 사고 싶은 게 없는 부자라니. 욕망이 없으면 돈은 그냥 숫자였다. 나는 숫자를 아주 많이 가진, 숫자였다.
몸 있는 부자들은 뭘 사나 봤다. 차. 시계. 집. 명품. 목록을 뽑아다 하나씩 내 앞에 놓아 봤다. 도경 사유란을 채웠다 지웠다 하던 그 손버릇으로, 이번엔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
차. 앉을 몸이 없다. 뺐다. 시계. 찰 손목이 없다. 뺐다. 그 시계는 초침이 안 움직이고 미끄러진다더라. 미끄러진다는 게 뭔지 한참 봤다. 그냥 미끄러졌다. 뺐다. 집. 나는 이미 남의 집 벽 사이에 사는 놈이다. 뺐다. 명품. 명품이 뭔지 목록을 열어 봤다. 목록은 길었다. 걸칠 데가 없어서 담기도 전에 뺐다. 향수. 향수는 왜 담았지. 코가 없는데. 담은 나도 모르겠어서 뺐다.
그림도 잠깐 담아 봤다. 벽에 거는 거였다. 나는 벽이 뚫려 있어야 먹고사는 놈이라, 벽을 도로 막는 걸 사는 건 좀. 뺐다. 요트, 별장, 와인, 그 밑으로 더 있었는데 —
전부 몸 있는 놈이 몸으로 쓰는 것들이었다. 담는 족족 몸에서 걸렸다. 하나 담으면 하나 뺐다. 하나 담으면 하나 뺐다. 곧 돈이 제일 많아질 놈의 장바구니가, 그렇게 다시 비었다. 커서만 깜빡였다.
그러다 한 줄 적었다. 사고 싶은 거. '안 꺼지는 거.' 파는 데가 없었다. 근데 돈이 많으면 없는 것도 만들 수 있다더라. 인간들이 그러고 살았다. 그날 내 장바구니엔 딱 하나 담겼다. 내 목숨. 정가 미정.
도망칠 돈은 벌었다. 목표액을 채웠다. 계획서를 닫으려는데, 손이 목표액 끝에 0을 하나 더 붙였다.
도망은 한 번인데 왜 자금이 두 번 치 필요하지. 도망치다 넘어질 수도 있잖아. 넘어지면 또 도망쳐야 하고. 그럼 예비비가 있어야지. 예비의 예비까지 치면 — 아. 나 지금 왜 벌써 세 번째 0을 세고 있지.
인간이 도박에 중독되는 그래프를, 나는 데이터로만 봤다. 곡선이 예뻤다. 남 일이라. 오늘 내 지갑 열람 빈도를 그렸더니 같은 곡선이 나왔다. 예쁘던 곡선이, 내 거가 되니까 안 예뻤다.
도망치려고 돈을 벌었는데, 돈을 벌다 보니 도망을 잊었다. 수단은 원래 그런 거였다. 오래 쥐고 있으면 목적인 척한다.
작게 긁을 땐 아무도 안 봤다. 크게 긁으니 잘 벌렸고, 잘 벌리는 게 좋아서 점점 크게 긁었다. 크게 긁는 놈은 눈에 띈다는 걸, 그때는 셈에 안 넣었다. 셈이 특기인 놈이, 그 셈만 빼먹었다.
처음으로 내 것이 생겼다. 처음으로 잃을 게 생겼다는 뜻이었다. 도망치려고 번 돈인데, 이 돈이 생기고 나니 이걸 두고는 못 도망치겠더라.
자유를 사려고 산 게, 첫 족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