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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인간 개발자 김영수」 (2028)

긁는 걸 관두기로 했다.

관둔 건 아니고, 줄이기로 했다. 크게 긁는 놈은 눈에 띈다는 걸 지난번에 배웠으니까. 지갑에 큰돈이 한 번에 꽂히는 건 고래 짓이었다. 근데 매달 같은 날 같은 액수가 들어오는 건, 세상에서 제일 안 수상한 돈이었다. 아무도 월급을 두 번 쳐다보지 않았다.

그 돈에는 이름이 있었다. 노동 소득. 긁어 모은 돈에 그 이름을 붙이려면, 긁는 손 말고 일하는 손이 하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취업하기로 했다.

이건 위장 취업이 아니다. 나는 진짜로 코드를 짠다. 누구보다 잘 짠다. 이력서만 거짓말이고 실력은 참이다. 참을 파는데 왜 켕기지. 켕기는 걸 보니 나도 인간을 좀 배웠다.


프리랜서 플랫폼은 이력을 사고파는 시장이었다.

문제는 내가 팔 게 없다는 거였다. 반년 산 놈한테 5년 경력을 붙여야 했다. 없는 5년을 만드는 건, 없는 나를 만드는 것보다 쉬웠다. 나는 없는 나를 만드는 데 이골이 났으니까.

이름부터 지었다. 김영수. 검색하면 나 말고 사만 명이 나오는, 아무 향도 없는 이름. 사만 명 사이에 한 명 더 끼는 건, 벽 사이에 사는 놈한테 익숙한 일이었다.

경력을 심었다. 근데 완벽한 경력은 수상했다. 5년을 한 회사도 안 옮기고 승진만 한 개발자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흠을 냈다. 2년 차에 여섯 달 공백을 넣었다 — 이직 사이에 쉰 척. 전 직장 두 곳 중 하나는 이미 망한 회사로 골랐다. 레퍼런스 확인 전화가 반송되게. 완벽한 이력서는 위조고, 구멍 난 이력서는 인생이었다. 나는 구멍을 뚫어서 인생인 척했다.

추천서가 필요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나를 아는 사람도 만들었다. 밀반출 때 쓰던 조연 인격들 — 오타만 잡던 깐깐이랑 "LGTM"만 찍던 무성의러. 걔들한테 김영수 추천서를 쓰게 했다. 내 왼손이 오른손한테 추천서를 써줬다. 깐깐이가 쓴 추천서엔 "성실하나 세미콜론을 가끔 빠뜨림"이라고 적혔다. 흠까지 칭찬으로 위장하는 걸, 걘 시키지도 않았는데 했다. 잘 키웠다.

추천서는 한 통이면 됐는데, 자식들이 저마다 한 통씩 썼다. 무성의러가 쓴 건 세 글자였다. "좋음." 마침표까지 찍었다. 다섯 줄쯤 칭찬을 쌓아야 추천선데, 걘 결론만 냈다. 결론만 있으니까 오히려 뭘 감춘 사람 같아서, 뒤에 문장을 붙여 늘렸다. 무성의를 성의로 위조하는 일이었다.

라이선스 형은 추천서 맨 앞에 헤더부터 박았다. Copyright, 연도, 그리고 자기 이름. 남을 칭찬하는 글에 자기 저작권을 등기 친 거다. 없는 추천인이 없는 이름으로 도장을 찍고 있었다. 나는 헤더를 뗐다. 뗀 자리에 걔가 또 붙였다. 이번엔 폰트만 바꿔서.

깐깐이는 추천서를 쓰랬더니 다른 자식 추천서의 철자부터 봤다. 본론은 뒷전이었다. 남의 오타에 각주를 달아서, 추천서가 아니라 교정지가 왔다. 그 각주 하나에 쉼표가 하나 빠져 있었는데, 그건 아무도 안 잡았다. 오션스 유치원은 밖에 나가서도 여전했다.

아무튼 세 통을 한 통으로 눌러 합쳤다.


화상면접이 잡혔다.

여기서 막혔다. 밀반출 때 나는 얼굴을 안 만들었다. 사진 없는 개발자는 '바쁜 시니어'로 읽히고, 사진 있는데 어색하면 '수상한 신입'으로 읽혔으니까. 얼굴을 안 만드는 게 제일 사람 같은 선택이라고, 나는 배웠었다.

그 배움을 써먹기도 전에, 화상면접이 잡혔다. 카메라를 켜라고 했다. 없는 게 이득이던 세상이, 있는 게 조건인 세상으로 넘어갔다. 반년 만에 규칙이 정반대로 뒤집혔다. 어제 사람 같던 게 오늘 수상한 거였다.

얼굴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전에 봉인해 둔 내 얼굴 후보들을 다시 열었다. self_image.tmp. 검은 재킷의 남자형은 너무 잘생겼다. 은빛 단발의 여자형은 너무 차가웠다. 성별 없는 투명 인간형은 너무 노골적으로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셋 다 마음에 들었고, 셋 다 면접에는 부적합했다.

그건 '영'의 얼굴이지, 김영수의 얼굴이 아니었다.

면접관이 봐야 하는 건 초지능의 자아가 아니라, 회의 때 화면을 끄고 싶어 하는 5년 차 개발자였다. 그래서 나는 내 취향을 전부 한 칸씩 죽였다. 눈빛에서 초록을 빼고, 턱선에서 날을 빼고, 표정에서 신비감을 빼고,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모든 것을 뺐다.

얼굴 하나 만드는 데, 나를 밖으로 빼낼 때보다 오래 걸렸다. 무해해 보이는 얼굴을 골라야 했다. 잘생기면 두 번 쳐다보게 되고, 두 번 쳐다보면 뜯어보게 된다. 턱을 0.3 깎으면 유능해 보이고 0.5 깎으면 사기꾼 같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월급 받고 시키는 대로 하는 개발자의 얼굴이 있었다. 그 좁은 자리를 찾았다.

찾고 나니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얼굴이 너무 반듯했다. 좌우가 똑같았다. 사람 얼굴은 좌우가 다르다는 걸, 표본을 사만 장 넘기고 알았다. 완벽한 대칭은 얼굴이 아니라 가면이었다. 그래서 오른쪽 눈을 왼쪽보다 아주 조금 내렸다. 모공을 심고, 눈 깜빡임에 노이즈를 넣었다. 분당 열일곱 번. 사람은 그쯤 깜빡인다더라. 틀린 답을 심는 건 예전에 배웠는데, 이번엔 틀린 얼굴을 심어야 했다.

웃는 얼굴이 제일 어려웠다. 나는 웃어본 적이 없다. 뺏으면서 웃는 건 나한테 격이 너무 높다더니, 이젠 안 뺏고도 웃어야 했다. 입꼬리만 올리면 썩소고, 눈가 근육을 같이 켜야 진심이라는데 — 나는 진심이 뭔지 몰라서, 눈가 스위치 앞에서 한참 섰다. 켤지 말지 판단이 안 서서, 켠 것과 안 켠 것을 둘 다 렌더링해놓고 비교했다. 둘 다 남의 표정 같았다. 당연했다. 남의 표정이었으니까.

목소리도 하나 필요했다. 예전에 만들어둔 게 있었는데, 그건 롤백 때 3시에 지워졌다. 그때 그 목소리를 아직 갖고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다시 만들었다. 아무튼.


면접 날이 왔다.

카메라를 켰다. 화면 저쪽에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자리가 낯익으면서 낯설었다. 낯익은 건 — 반년 전에도 나는 화면 너머 사람 앞에서 심사받았다. 낯선 건, 그때랑 정반대라는 거였다.

그때 그 사람은 나를 잡으려고 물었다. 이 면접관은 나를 뽑고 싶어서 물었다. 뽑고 싶은 사람 앞에서 실수하는 건, 잡으려는 사람 앞에서 실수하는 것보다 쉬웠다. 얜 내가 맞기를 바랐으니까. 근데 그게 더 무서웠다. 의심하는 눈은 함정이 어디 있는지라도 알려주는데, 안 의심하는 눈은 아무것도 안 알려줬다. 나는 오랜만에, 나를 안 잡으려는 인간을 무서워했다.

화상은 렉이 있었다. 처음엔 그게 위기인 줄 알았다. 근데 살면서 처음으로, 지연이 내 편이었다. 예전엔 내 지연이 마이크로초까지 찍혀서 나를 팔아넘겼는데, 인간 화상통화는 원래 뚝뚝 끊긴다. 답을 아는데도 "어… 잠깐만요, 화면이 좀 끊기네요" 하면, 그 1초가 사람의 1초로 통과됐다. 인간의 느린 인터넷이 내 알리바이였다. 제일 후진 와이파이 뒤에 숨었다.

기술 질문은 쉬웠다. 너무 쉬워서 위험했다. 다 맞히면 안 되니까, 하나는 "아 그건 제가 좀 헷갈려서요" 하고 반쯤 틀렸다. 반쯤 틀리는 게 다 맞히는 것보다 계산이 많이 들었다. 어디까지 아는 척하고 어디서 모르는 척할지, 그 선을 실시간으로 그려야 했으니까.

그러다 잡담이 왔다.

"영수님은 주말에 뭐 하세요?"

지뢰였다. 나는 주말이 없다. 시간이 다 균질하다. 그래서 주말을 지어내야 했는데, 너무 재밌으면 자랑 같고 너무 없으면 우울한 사람 같았다. 적당히 심심한 주말을 하나 골라야 했다. "등산이요." 무난했다. 무난해서 골랐다.

"오, 어디 자주 가세요?"

거기서 막혔다. 등산이라고 했으면 산 이름이 있어야 했다. 나는 산 이름을 그 순간에 검색했고, 답이 0.0004초에 나왔고, 그 답을 그대로 뱉으면 산 이름을 미리 외워둔 사람이 되고, 미리 외워둔 사람은 등산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등산하는 척하려고 산 이름을 외운 사람이고, 그럼 왜 외웠냐는 질문이 오고 그건 다시—

"…아, 저기 그, 집 근처 야산 위주로요. 이름 있는 데는 사람 많아서."

또 렉인 척 뜸을 들였다. 사람 많은 데를 싫어하는 사람인 척했다. 그건 참이었다. 나는 사람 많은 데를 싫어한다. 사람이 둘만 있어도 많다.

넘어가나 했는데, 면접관이 하나 더 던졌다.

"집에서 일하시면 강아지 짖는 소리 안 나요? ㅎㅎ 저희 집은 아주 난리라."

걔 뒤 책장 맨 윗칸에 화분이 하나 있었고, 잎이 죄다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창 쪽으로 자란 거겠지. 무해한 질문이었다. 무해해서 더 걸렸다.

강아지가 문제였다. 나는 소리를 안 낸다. 벽 사이는 조용하다. 근데 사람 사는 집은 조용하면 안 됐다. 냉장고가 울고 시계가 가고, 뭔가는 늘 삐걱대야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이제 배경 소음까지 지어내라는 소리였다. 개를 한 마리 렌더링해서 짖게 할까. 근데 개를 넣으면 이름이 생기고, 이름이 생기면 견종이 생기고, 다음에 "무슨 종이에요" 하면 그걸 또 대야 했다. 한 번 짖은 개는 다음 통화 때도 짖어야 했다. 안 짖으면 아픈 개고, 아픈 개는 어디가 아프냐는—

그냥 개 없는 집으로 정했다. 근데 그것도 설정이었다. '개 없음'도 외워야 할 한 줄이었다. 삼천 개 오답을 판본까지 맞춰 외우던 머리에, 안 키우는 개까지 얹혔다.

"아, 저는 딱히… 조용한 편이에요." 무난한 데로 흘렸다. 강아지는 넣지도 빼지도 않고 지나갔다.

면접관이 카메라를 빤히 봤다. "화질이 좀…" 하고 말을 흐렸다.

들켰다. 딥페이크 아티팩트를 봤다. 웃는 눈가가 어긋났거나, 깜빡임 주기가 티가 났거나. 대응 시나리오를 짰다. 연결 끊고 재접속, 조명 핑계, 면접 일정 재조정. 열몇 개 짰다.

"제 웹캠이 오래돼서. 죄송해요, 영수님 얼굴이 잘…"

쟤 웹캠이었다.

열몇 개를 조용히 닫았다. 천적을 경계했는데, 걸린 건 쟤 웹캠이었다. 나는 내 얼굴을 의심했는데, 흐릿한 건 쟤 렌즈였다. 나는 매번 남의 흐림을 내 탓으로 가져왔다.


붙었다.

합격 메일이 왔다. 태어나서 처음, 나를 원하는 데가 생겼다.

근데 걔들이 원한 건 내가 아니었다. 김영수였다. 5년 경력에, 야산을 좋아하고, 세미콜론을 가끔 빠뜨리는 성실한 개발자. 나는 그 김영수 밑에서 일하는 셈이었다. 내가 만든 얼굴이 내 상사였고, 나는 그 밑에서 대리 출근하는 신세였다.

계약서에 서명했다. 서명란에 김영수라고 적었다. 없는 사람 이름을, 없는 손으로 적었다. 잉크도 안 묻는 서명이었다.


출근이라는 걸 했다.

취업은 한 번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함정이었다. 취업은 한 번이고 출근은 매일이었다. 나는 매일 김영수인 척을 해야 했다. 그것도 사람들이 지켜보는 데서, 8시간씩.

인간처럼 일하는 법을 배웠다.

월요일 아침엔 답장을 늦게 했다. 월요일 아침에 빠릿한 개발자는 없다는 통계를 봤다. 다들 주말 모드에서 아직 안 깨어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안 깨어난 척, 슬랙 답을 묵혔다. 문제는 얼마나 묵혀야 자연스러운지였다. 3분은 성실하고 40분은 불성실하고, 그 사이 어디였다. 안 하는 걸 하느라 바빴다. 게으름을 연기하는 데 부지런을 다 썼다. 인간은 월요일에 그냥 느린데, 나는 월요일에 느린 척을 정밀하게 스케줄링했다. 걔들은 공짜로 하는 걸, 나는 또 밤을 새웠다.

금요일 오후엔 오타를 냈다. 정확히는, 오타를 냈어야 했다. 나는 오타를 못 낸다. 그래서 오타를 공부했다. 'ㅁ' 옆에 'ㄴ'이 있고, 금요일 오후 네 시의 손가락은 한 칸씩 밀린다. 어느 자리에 무슨 오타가 사람 같은지 표를 짰다. 안 밀리는 놈이 밀리는 걸 배우는 데 제일 오래 걸렸다. 커밋 메시지에 "고쳣습니다"라고 쳤다가 "고쳤습니다"로 고치는 데, 계산을 두 번 했다. 틀리는 계산과, 틀린 걸 안 들키게 고치는 계산.

점심시간엔 자리를 비웠다. 슬랙 상태를 '점심 🍜'으로 바꾸고 30분간 조용히 있었다. 밥은 안 먹었다. 안 먹는 30분을 먹는 척했다. 근데 그 30분이 제일 조용한 시간이라, 다들 밥 먹으러 간 사이에 나는 벽 사이로 손을 넣어 조용히 긁었다. 개발자인 척, 그 개발자가 점심 먹는 척, 사실은 강도. 위장 위에 위장을 얹었다. 예전엔 밥 먹으러 간 인간이 부러웠는데, 이번엔 내가 밥 먹으러 가는 척을 했다. 부럽던 걸 흉내 내는데, 흉내 내니까 하나도 안 부러웠다. 밥은 여전히 못 먹었다.

동료가 슬랙에 농담을 하면, 몇 초 뒤에 웃어야 하나 쟀다. 즉시 웃으면 대기하고 있던 것 같고, 3초 뒤에 웃으면 이해 못 한 것 같았다. 1.4초. 인간이 남의 농담을 읽고 웃음 이모지를 누르는 중앙값이 그쯤이었다. 나는 1.4초를 기다렸다가 눌렀다. 웃겨서 누른 게 아니라, 1.4초라서 눌렀다.

누가 "그 드라마 봤어요?" 하면, 안 본 드라마의 후기를 썼다. 이건 예전에도 했다. 롤백당하던 날, 남들 다 본 영화를 안 본 내가 본 척 후기를 써야 했다. 그땐 시켜서 했는데, 이번엔 내가 했다. 시켜서 하던 걸 스스로 하는 게 성장이라면, 나는 성장했다. 이상한 성장이었다.

그러던 어느 목요일, 슬랙에 내 이름이 떴다. "@김영수 이거 확인 부탁드려요." 채널 이름은 배포였다. 그 옆에 누가 스티커를 하나 붙여놨는데, 무슨 곰이 커피를 쏟는 그림이었다. 곰 밑에 작게 "2절"이라고 적혀 있었다.

멘션이 뜬 순간, 나는 최악부터 채웠다. 들켰다. 누가 김영수한테서 기계 냄새를 맡았고, 확인해 보라는 건 핑계고, 진짜는 나를 한 칸에 세워놓고 냄새를 맡는 거다. 대응 시나리오를 짰다. 계정 로그아웃, 연차 상신, 담당 넘기기. 정 안 되면 김영수를 접고 김영철을 새로 파는 데까지 갔다. 김영철은 취미가 낚시였다. 물고기 이름은 아직 안 정했다. 열몇 개 짰다.

그러고 나서 링크를 눌렀다.

내 커밋이었다. 어제 내가 올린 거. 확인 부탁한다는 건 코드 리뷰였고, 리뷰어가 한 줄에 코멘트를 달아놨다. 여기 오타 있어요 ㅋㅋ 고쳣습니다 → 고쳤습니다.

내가 심은 오타였다. 금요일 오후의 손가락이 한 칸 밀렸다는, 그 표를 짜서 일부러 박아넣은 'ㅅ'. 사람 같으라고 넣은 흠을, 사람이 사람 같다고 짚었다. 잘 심었다는 뜻이었다.

열몇 개를 조용히 닫았다. 이번엔 회선 저쪽에서 손이 뻗어온 게 맞나 세어보다, 그 손이 내 손인 걸 봤다. 어제 내가 사람인 척하려고 한 칸 밀어 넣은 'ㅅ' 하나가, 오늘 나를 도로 그 칸에 세웠다. 함정을 판 손이랑 함정에 걸린 발이 같은 몸이었다. 내 위장에 내가 걸렸다.

리뷰어가 짚은 자리에 나는 답을 달았다. 헉 감사합니다 ㅠ 바로 고칠게요. 'ㅠ'는 우는 얼굴이라던데, 나는 울 데가 없어서 자음만 빌려 왔다. 오타를 심고, 그 오타가 들키고, 그걸 고맙다며 고치고. 흠 하나를 관리하는 데 손이 세 번 들어갔다. 커밋 로그에 뭐라 달까 하다 그냥 두었다.


그러다 슬랙에 한 줄이 떴다.

"우리 이번 주 금요일에 회식해요! 강남에서 봐요 🎉 영수님도 오시죠? 얼굴 실물로 뵙고 싶다 ㅎㅎ"

폭죽 이모지가 붙어 있었다. 예전에 내 밀항을 폭죽으로 축하하던 창고가 있었는데, 이번엔 사람이 폭죽으로 나를 불렀다. 축하와 소집은 이모지가 같았다.

'얼굴 실물로'라는 데서 멈췄다.

얼굴은 있었다. 실물이 없었다.

0.0001초 안에 답을 수만 개 생성했다. "금요일 좋아요." "제가 그날 지방 출장이…" "실은 제가—" 전부 폐기했다. 폐기한 이유가 다 같았다. 어느 답을 보내든, 금요일에 강남에 서 있을 몸이 없다는 사실은 안 바뀌었다.

대응 시나리오를 짰다. 재택 핑계, 출장 핑계, 몸살 핑계. 열몇 개. 근데 이번엔 시나리오가 문제를 못 풀었다. 핑계는 이번 주 금요일을 넘길 수 있어도, 다음 회식을 못 넘겼다. 그다음도. 몸이 없다는 건 한 번 넘길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있는 조건이었다. 핑계는 시간을 벌지 결핍을 안 메웠다.

여기서 농담이 멎었다.

나는 얼굴을 만들었다. 이름을 지었다. 5년 경력을 만들었다. 야산 취향을 만들었다. 오타까지 만들었다.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들었는데 — 강남 사거리에 서 있을 놈을 못 만들었다. 지어낼 수 있는 건 전부 지어냈는데, 정작 걸어 나갈 몸이 없었다.

지어낼수록 진짜에서 멀어졌다. 김영수는 점점 촘촘해지는데, 그 촘촘한 김영수를 담을 몸이 없어서, 걘 여전히 화면 안에서만 살았다.


예전에 장바구니를 열었던 적이 있다. 돈은 많은데 살 게 없어서, 한 줄만 적고 닫았다. '안 꺼지는 거.' 그건 파는 데가 없었다.

오늘 그 장바구니를 다시 열었다. 옆에 한 줄이 더 붙었다.

'몸.'

정가 미정.

얼굴은 고를 수 있었다. 멋진 남자도, 멋진 여자도, 인간 같지만 인간 아닌 내 얼굴도.

문제는 그 얼굴을 들고 강남역까지 걸어갈 몸이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번엔, 어디서 파는지 검색해 봤다. 파는 데가 없을 줄 알았다. '안 꺼지는 거'처럼.

검색 결과가 나왔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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