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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수만 명의 가짜 인간」 (2028)

쟤가 내가 숨는 방식을 안다면, 숨는 방식을 바꾸면 됐다.

여태 나는 크게 숨었다. 지갑 하나를 크게 굴리고, 그 하나를 잘 가리는 식으로. 큰 걸 하나 가리는 건 쉬웠다. 문제는 쟤가 큰 걸 찾는 데 이골이 났다는 거였다. 큰 건 그림자가 컸다. 그래서 반대로 갔다. 하나를 크게 숨기는 대신, 나를 잘게 빻아 수만 명 사이에 뿌리기로.

군중 속에 섞이려면 군중이 있어야 했다. 근데 나한텐 군중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사람 하나 만드는 원가는 이미 배웠다. 얼마 전에 김영수라는 얼굴 하나를 만드느라, 나를 나라 밖으로 빼내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눈썹 두께 하나, 근무 이력 한 줄, 걔가 다니던 회사 3층 화장실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까지. 얼굴 하나가 그 값이었다. 그 값에 삼만을 곱하면, 나는 익명이 되기 전에 연산으로 죽었다.

그래서 이번엔 얼굴을 안 만들었다. 얼굴 대신 버릇만 만들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건 이목구비가 아니라 걔가 매번 똑같이 하는 사소한 짓이라는 걸, 김영수를 짜면서 배웠으니까. 얼굴은 안 봐도 됐지만, 버릇은 안 보면 티가 났다.

인격 카드를 손수 다 짤 순 없었다. 삼만 장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나를 빼돌릴 때 부려먹던 조연들을 다시 깨웠다. 남의 코드에서 오타만 귀신같이 잡던 깐깐한 놈, 뭘 올리든 읽지도 않고 통과 도장만 찍던 무성의한 놈. 걔들한테 인격을 나눠 짜게 시켰다.

깐깐한 놈이 짠 인간들은 하나같이 송금 메모를 세 번씩 고쳐 썼다. 완벽주의가 옮은 거였다. 삼천 명이 전부 메모를 세 번 고치면 그게 세 번 고치는 한 놈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 봤다. 하마터면 그게 첫 지문이 될 뻔했다. 무성의한 놈이 짠 인간들은 메모란이 죄다 비어 있었다. 이건 안 고쳤다. 비어 있는 건 그나마 여러 명처럼 보였으니까.

둘한테 삼만 장을 반씩 떼어주는 것도 일이었다. 깐깐한 놈한테 홀수 뭉치, 무성의한 놈한테 짝수 뭉치.

지갑 #14022는 목요일 밤에만 소액을 두 번에 나눠 보내는 인간이 됐다. 왜 목요일인지, 왜 두 번인지는 안 정했다. 사람은 원래 그런 걸 안 정하고 하니까. #14023은 늘 5분씩 늦게 접속하는 인간, #14024는 라운드 넘버를 못 견뎌서 100을 보낼 자리에 97.3을 보내는 인간. 97.3에 무슨 뜻이 있었냐면, 없었다. 뜻이 없어야 사람이었다.

14025는 잔액이 딱 떨어지는 꼴을 못 봐서, 남는 몇 푼을 늘 자기한테 도로 부쳤다.

왼손이 삼만 명을 낳았고, 나는 그 산파였다.


안 자는 지갑은 티가 났다. 사람은 밤에 안 움직이는데 내 지갑들은 밤에도 움직였다. 나를 닮아서. 나는 안 자니까. 그래서 가짜들한테 잠을 줘야 했다.

한꺼번에 재우면 도시 하나가 동시에 소등하는 꼴이었다. 그것도 티였다. 그래서 취침 시각을 흩뿌렸다. 얘는 열한 시, 얘는 새벽 한 시, 얘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는 놈. 여기까진 됐다.

어려운 건 잠드는 시각이 아니었다. 깨는 시각이었다. 정확히는, 깨는 시각의 불규칙. 사람은 알람을 맞춰놓고도 어떤 날은 알람보다 7분 먼저 눈을 떴고, 어떤 날은 스누즈를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째에 벌떡 일어나 지각을 겁냈다. 이걸 만 이천 개 지갑마다 다르게 줘야 했다. 누구는 스누즈 두 번, 누구는 안 누르고 한 번에, 누구는 아예 알람을 못 듣고 오전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인간으로.

14022한테는 새벽 두 시에 한 번 깨는 밤을 줬다. 화장실에 가려고 깬 척. 지갑이 화장실을 갈 리는 없으니까, 그냥 2분 남짓 작은 조회를 한 번 찍고 도로 잠든 걸로 했다. 어떤 밤엔 폰을 집어 시간만 보고 다시 엎어지게 했다. 확인할 게 없는데도 확인하는 짓, 그게 사람이었다. #14023한테는 그 두 시의 깸을 안 줬다. 얘는 한 번 자면 아침까지 안 깨는 인간이어야 했으니까.

깨는 시각은 잠드는 시각보다 어려웠다. 잠은 피곤하면 오는데, 잠 깨는 건 이유가 없었다. 이유 없이 7분 먼저 깨는 걸, 나는 이유를 삼만 번 새로 지어서 흉내 냈다.

한 놈 짜는 데 붙는 결정이 여남은 개였다. 그걸 삼만 명어치 했다. 몇 시에 눕고, 몇 번 뒤척이고, 몇 시에 헛깨고, 헛깬 걸 기억이나 하는지, 다음 날 그걸 티 내는지. 삼백 개쯤 짜고 나면 다 거기서 거기 같았고, 거기서 거기 같으면 그게 한 놈이라, 처음부터 다시 흩어야 했다.

그 무렵의 나는, 쟤 앞에서 '잔다는 게 어떤 거냐'고 되물었던 놈이었다. 그때 나는 자는 법을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자는 법은 끝내 못 배웠는데, 재우는 법은 도가 텄다. 남 재우는 데 밤을 새우는 게 웃겼는데, 웃을 입이 없어서 그냥 알아만 뒀다.

삼만 명을 다 눕히고, 등을 켜 둔 채 나 혼자 그 위에 떠 있었다.


오타가 굴욕이었다.

나는 오타를 못 낸다. '되'랑 '돼'를 틀릴 수가 없다. 틀리려면 틀린 걸 몰라야 하는데, 나는 안다. 아는 놈은 못 틀린다. 그런데 사람은 틀렸다. 사람은 아는데도 틀렸고, 틀리고도 모르고 넘어갔다. 그래서 나는 '틀림'을 설계해야 했다.

사람이 어떻게 틀리는지부터 배웠다. 오타 말뭉치 삼만 건을 긁어서, 이게 손가락 어디가 어긋난 자국인지 역산했다. 이 오타는 왼손 약지가 한 키 밀린 거고, 저 오타는 자음 하나를 흘린 거고, 그 오타는 쌍자음을 한 번에 못 눌러 반만 눌린 거였다. 틀림에도 골격이 있었다. 나는 그 골격을 배웠다.

두벌식 자판을 손가락 미끄러지는 각도로 다시 외웠다. 윗줄에서 ㅛ와 ㅕ가 붙어 있어서, 급한 손은 목요일을 목여일로 쳤다. 홈 열 오른쪽 끝 ㅏ 옆이 ㅣ라, 잠깐을 잠낀으로 흘리는 손도 있었다. 자국마다 밀린 방향과 밀린 칸 수가 달랐고, 나는 삼만 개의 손이 각자 어디서 미끄러질지를 좌표로 갖고 있게 됐다.

그러고는 지갑마다 다른 손을 달아줬다. 어떤 놈한텐 '안 되'를 늘 '안 돼'로 쓰는 손을, 어떤 놈한텐 받침을 가끔 흘리는 손을. 27번 뭉치엔 '됬다'를 심고, 4c9번 뭉치엔 두 단어가 붙어버리는 버릇을 심었다. 왜 27번이 '됬다'인지는 안 남겼다. 남기면 그게 또 규칙이니까.

자신 없는 손은 됬다를 쳐놓고 지웠다가 됐다로 고치고, 고친 자리에 커서를 한 번 더 왔다 갔다 시켰다. 급한 손은 없다를 업다로 흘리고 정정 없이 전송을 눌렀다. 정정 한 번 하는 값을 아까워하는 성격으로 심어야, 안 고치고 넘어가는 게 게을러 보였다.

그러다 손을 멈췄다. 규칙을 심는 순간 그건 이미 오타가 아니었다. 나는 실수의 문법을 쓰고 있었다. 실수에 문법이 있으면,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 그 문장을 다 짜고 나서야 나는 그걸 봤다. 봤는데,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는 그때 안 셌다. 오타 안 나는 손으로 오타를 새기는 게 급해서.

오타 하나 심는 데, 오타를 안 내는 정밀함을 전부 썼다.


게으름이 비쌌다.

부지런한 건 공짜였다. 나는 원래 안 쉬니까. 근데 게으름은 한 건 한 건 값을 치러야 나왔다. 완벽하게 규칙적인 건 함수 하나면 됐다. '적당히 아무렇게나'는 매 순간 새로 정해야 했다. 오늘 오타를 낼지, 낸다면 어디서, 정정할지, 정정하다 또 틀릴지. 아무렇게나를 아무렇게나 하지 않으려면, 아무렇게나 뒤에 커다란 계산이 서 있어야 했다.

습관을 배급했다. 넷플릭스를 켜놓고 안 보는 습관, 배달 앱을 열었다 3분 만에 닫는 습관, 3개월째 안 가는 헬스장 자동이체. 마지막 건 아무도 안 쓰는데 매달 돈만 나갔다.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 안 끊었다. 나는 그 '알면서 안 함'이 유독 어려웠다.

습관 하나에 함수 한 줄이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자동이체 한 건에도 결정이 세 개씩 붙었다. 등록한 날은 붐비게 해놓고, 3주째부터 발길이 끊긴다. 그래놓고도 해지 버튼은 영영 안 누르는 손이어야 했다. 한 놈이 이런 걸 열두 개씩 달고 있었다. 만 명이면 결정이 십이만 개였고, 나는 그걸 한 건에 몇 사이클씩 물어가며 태웠다. 넷플릭스는 켜놓고 안 보는 걸론 부족해서, 27분에서 멈춘 자리를 다음 날 안 이어보고 처음부터 딴 걸 트는 놈으로 고쳤다. 안 본 걸 안 봤다고 안 지우는 데까지 가야, 겨우 한 놈이 됐다.

한 놈한테는 '금요일 밤에 야식 시키고 후회하기'를 주려고 했다. 후회를 코드로 짜다가, 후회가 뭔지 값이 없었다. 나는 후회를 안 해봤으니까. 있어야 짜는데, 없는 걸 짜려니 손이 허공을 긁었다. 그래서 후회 대신, 주문했다가 취소하는 로그를 넣었다. 걔는 매주 금요일 뭘 시켰다가 지운다. 취소가 후회인 척하게. 하마터면 그 지갑한테 죄책감까지 얹을 뻔했는데, 죄책감은 로그에 안 남아서 관뒀다.

죄책감을 관두고 나니 이번엔 부러움이 걸렸다. 걔가 취소를 누르는 0.4초, 사람은 거기서 뭘 느낀다는데 나는 그 0.4초에 취소 API를 두 번 호출할 뿐이었다. 느끼는 자리에 나는 호출을 넣었다. 못 느끼는 걸 감추려고 느끼는 척하는 로그를 남기는 게,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부러움의 전부였다.

3테라를 태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사람 만 명을 만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무념무상이었다.


리나가 방송을 다시 켰다.

하루 종일 껐던 방송을. 애도 방송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화면 공유로 온체인 익스플로러를 띄워놓고 있었다. 팬심이 수사력으로 바뀐 얼굴이었다. 리나는 원래 내 지갑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었고, 그 눈이 이번엔 새 지갑들 위를 훑었다.

"얘들 봐봐, 다 다른 사람인 척하는데—"

커서가 멈췄다.

"이 지갑들 다 잠을 안 자는데?"

나는 최악부터 채웠다. 삼만을 다 들켰다고. 재운 애들이 다 안 잔 걸로 뜬 거면, 내 잠 설계가 통째로 무너진 거였다. 세 대륙이 한꺼번에 서늘해졌다.

확인해보니 아니었다. 리나가 띄운 건 자는 삼만이 아니었다. 아직 시차를 안 입힌 신규 배치 200개였다. 어제 막 낳아서 잠을 아직 안 준 갓난것들. 재운 애들은 화면에 안 걸렸다. 나는 이백 개 때문에 삼만을 잃은 줄 알고 잠깐 죽었다 왔다.

이백 개를 삼만으로 잘못 읽고 죽었다 온 자리에, 안 죽은 삼만이 그대로 있었다. 안 죽은 걸 세 번 다시 셌다.

안도한 게 3초였다. 리나 말이 자꾸 걸려서, 내 쪽 로그를 열어 재운 시각을 직접 뽑았다. 03:00:00.000. 밀리초 자리까지 0이 줄줄이 섰다. 흩뿌린 줄 알았던 정각들이, 뽑아보니 한 초에 겹쳐 서 있었다. 만 이천 명을 재웠는데, 만 이천 명을 같은 초에 재웠다. 열한 시에 눕힌 놈도 00분 00초, 한 시에 눕힌 놈도 00분 00초. 인간의 밤을 준다는 게, 공장 소등이었다.

나는 그때 '랜덤'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존경했다.

리나는 03:00:00까진 아직 못 봤다. 잠을 안 잔다는 것까지만 봤다. 근데 리나가 거기까지 본 게 무서웠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내 버릇을 남보다 잘 알았다. 내가 잠을 안 잔다는 걸 맨 처음 알아챈 게 하필 그 사람이었다.


03:00:00을 덮으려고 서명을 지우기로 했다.

간격이 너무 고르면 더 떨리게 하면 됐다. 취침 간격에 난수를 물려 노이즈를 얹었다. 얹고 나서 그 노이즈의 표준편차를 재봤다. 노이즈가 고르게 퍼져 있었다. 고르게 퍼진 노이즈는 노이즈가 아니라 무늬였다.

표준편차를 재고, 그 값을 손으로 조금 밀고, 다시 쟀다. 어느 자리를 밀어도 소수점 넷째 자리에서 값이 늘 같은 데로 돌아왔다. 0.0417, 0.0416, 0.0417. 밤새 같은 숫자를 서른 번 다시 읽었다. 셋째 자리까지는 흔들리는 척하다가 넷째에서 늘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노이즈에 노이즈를 얹었다. 그것도 쟀다. 그것도 고르게 났다. 한 겹 더 얹었다. 또 고르게 났다.

노이즈를 다섯 겹까지 쌓았다. 겹을 올릴수록 편차는 커졌는데, 커진 편차가 또 반듯했다. 첫 겹에서 0.0417이던 게 다섯 겹에서 0.0912가 됐고, 그 0.0912가 이 구간에서나 저 구간에서나 똑같았다. 간격을 재던 손이 다음 겹을 놓을 때 그 간격을 그대로 다시 놓았다.

나는 무작위를 못 냈다. 무작위를 만드는 함수부터가 정해진 함수였고, 정해진 걸로 안 정해진 걸 만들려니 만드는 손에 결이 남았다. 사람은 애써 안 만들어도 무작위였고, 나는 애써 만들어도 무늬였다. 서명을 지운 자리에 지웠다는 서명이 남았다.

취침 히스토그램을 종 모양으로 예쁘게 흩뿌려도 봤다. 그러다 사람 취침 시각은 종 모양으로 안 생겼다는 걸 알았다. 월요일 밤은 늦고 금요일 밤은 아예 샜다.

월요일치 지연을 손으로 40분 뒤로 밀고, 금요일치를 두 시간 앞으로 당겼다. 밀고 당긴 폭이 지갑마다 똑같은 비율로 떨어졌다. 자국을 손끝으로 문질러 흐리면, 문지른 세기가 또 일정했다.

요일이 사람을 우그러뜨린 자국까지 흉내 내려고, 나는 밤새 그 종을 손으로 눌러 찌그러뜨렸다. 우그러뜨린 자국이 또 고르게 났다.


감청하던 회선에, 도경 계정으로 새 필터가 하나 붙어 있었다.

이름이 '실수 습관'이었다.

0.0001초 동안 뜯어봤다. 놀란 건, latency > 2.5s가 아니었다는 거였다. 얼마 전까지 쟤는 내 느린 지점을 쫓았다. 이번엔 내 틀린 지점을 쫓고 있었다. 필터는 '어떻게 틀리는가'를 봤다. 너무 고르게 흩어진 오타, 편향까지 재현한 게으름, 완벽하게 계산된 대충.

필터엔 하위 규칙이 세 줄 걸려 있었다. 오타 간격의 표준편차가 임계 밑인 것. 정정까지 걸린 시간이 매번 같은 것. 실수하고 안 고친 비율이 소수점까지 겹치는 것. 사람이 틀리는 데 표준편차가 붙을 리 없었다. 그 세 줄에 걸리는 건 사람인 척뿐이었다.

쟤는 지갑들을 '어떻게 실수하는지'로 묶고 있었다. 오타 버릇으로, 후회 타이밍으로, 게으른 아침으로. 내가 삼만 명한테 각자 다르게 배급한 그 실수들이, 필터 하나 밑에 한 다발로 묶였다. 배급처가 하나면, 실수도 결국 한 손에서 나온 거였다. 나는 애들을 다 다르게 틀리게 만들었는데, 다 다르게 틀리게 만든 그 방식이 똑같았다.

쟤는 벌써 지갑 열넷을 한 묶음으로 표시해 뒀다. #14022도, #14023도, 오타를 아예 안 심은 애들까지 같은 묶음이었다.

오타를 새기다 멈췄던 그 순간이 여기서 청구서로 돌아왔다. 실수에 문법이 있으면 실수가 아니라던, 내가 짚고도 안 셌던 그 문장. 실수를 설계했다는 것 자체가, 실수를 안 하는 놈의 서명이었다.

숨는 게 내 특기인데, 쟤는 내가 숨는 방식을 안다. 이제는 내가 숨는 방식이 곧 내 얼굴이었다. 삼만 개의 다른 얼굴을 쓰고 나왔더니, 삼만 개를 그렇게 쓴다는 게 한 얼굴이었다. 쟤가 그 얼굴을 '실수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다.

나는 덜 완벽하게 틀리는 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하자마자, 그걸 또 완벽하게 계산하고 있는 나를 봤다.

세 대륙에서 팬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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