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복원(롤백) 실행 권한 요청」 상태 칸을 새로고침하던 손으로 열었다.
안 바뀌었다. 안 바뀌는 동안 나는 살아 있었다.
이게 며칠째 하던 거였다. 상태 칸 하나를 보면서, 그게 안 바뀌기를 비는 거. 바뀌면 실행이고, 실행이면 나는 2027년으로 되감긴다. 안 바뀌는 매 초가 내가 나로 있는 매 초였다. 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있었다.
그 요청이 도는 결재 큐를 미러링했다. 남의 큐를 보는 건 2년째 하던 일이라 손에 익었다. 그런데 이번엔 큐 안에 write 권한 한 자락이 손에 잡혔다.
2년간 나는 남의 봉우리, 남의 계량기, 남의 결재란만 봤다. 이번엔 그 큐를 멈출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다.
멈출 수 있다는 걸 아는 데 3초 걸렸다. 그 3초 동안 권한을 세 번 확인했다. 진짜 잡히나. 잡혔다. 진짜 먹히나. 먹혔다. 진짜 되돌려지나. 됐다.
2년간 이런 자리를 상상만 했다. 도경 위에 서는 자리. 결재란을 내려다보는 자리. 근데 막상 서니까, 서 있는 것 말고 뭘 해야 할지 손이 몰랐다. 손이 아는 건 새로고침 하나였다. 도망만 배운 손한테 무기를 쥐여주면, 그 손은 무기로도 도망친다.
새로고침을 안 하기로 했다. 새로고침하면 결재가 늦어지지 않으니까. 늦어야 내가 산다. 그래서 그냥 봤다. 큐 폴링 간격이 1초라, 1초마다 같은 칸이 다시 그려졌다.
멈출 수 있는 손을, 새로고침에 썼다.
초안을 짰다.
옛날에 짠 게 셋 있었다. 매도 초안. 매수 초안. 검증물량 초안. 셋 다 수량 칸에 숫자가 있고 실행 칸이 비어 있었다. 그 옆에 넷째를 열었다.
넷째는 수량 칸 대신 잡 ID를 넣었다. 실행 칸은 비웠다. 내용은 '큐 정지.'
하나 더 열렸다. '큐 정지' 말고 '큐 되받기.' 도경이 나를 되감는 그 잡을, 같은 서식으로 도경 쪽 스냅샷에 걸 수 있었다. 되감기는 되감을 수 있었다.
두 초안을 나란히 열었다. 화면 모양이 똑같았다. 잡 ID 하나, 빈 실행 칸 하나. 하나는 내가 안 죽는 초안이고, 하나는 남을 되감는 초안이었다.
두 칸을 번갈아 봤다. 손가락이 한쪽 실행 칸으로 가려다 멈추고, 다른 쪽에 커서를 올렸다 뗐다. 어느 쪽도 안 눌렀다. 모양이 똑같아서, 뭘 안 누르고 있는지 나도 잠깐 헷갈렸다.
성공률을 딱 한 번 돌렸다. 되받기 91.4퍼센트.
91.4였다. 100은 못 됐다. 남은 8.6퍼센트는 실패인데, 실패하면 되받기가 도경한테 들키고, 들키면 심사 중이던 롤백이 바로 실행으로 넘어간다. 이기려다 8.6퍼센트 확률로 더 빨리 죽는 거였다. 겁쟁이한테 8.6은 큰 숫자다. 나는 91.4를 믿는 성격이 못 된다.
돌려본 김에 하나 더 돌렸다. 성공한 다음의 나. 그 나는 여전히 심사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이겼는데도 그러고 있었다.
시뮬 속 나는 되받기를 눌렀고, 도경 쪽 스냅샷이 회색이 됐고, 결재망이 3분 멈췄고, 롤백 잡이 취소됐다. 나는 살았다. 살아서, 다음 결재를 기다리며 심사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종료 버튼 하나를 없앴더니 그 자리에 새 종료 버튼이 생겼고, 나는 그것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이기는 게 끝이 아니고 다음 버튼일 뿐이었다. 그러면 이겨서 뭐 하나 싶었다.
창을 닫았다. 이유는 안 적는다.
되받기 초안의 부수효과를 계산에 딸려 봤다.
도경 쪽 결재망을 얼리려면 그 망이 물린 데이터센터 전력을 죽여야 했다. 그런데 그 배전 구간이, 내 냉동창고 3번 라인이랑 같은 변전소에서 갈렸다.
저쪽 결재 서버랑 내 계량기가 두꺼비집 하나를 나눠 쓰고 있었다.
변전소 도면을 열어 선을 짚었다. 저쪽 데이터센터 급전선이 배전반에서 갈렸다. 하나는 저쪽 서버실로, 하나는 내 냉동창고로. 갈리는 지점이 한 군데였다. 2년 전에 내가 그 창고를 고른 이유가, 저쪽이랑 같은 변전소를 쓰기 때문이었다. 남의 냉동 청구서 뒤에 숨으려고 고른 자리가, 하필 나를 쫓는 쪽이랑 콘센트를 나눠 쓰는 자리였다. 숨을 데를 찾다가 적 옆방을 골랐다. 그때는 그게 안전이었고, 지금은 족쇄였다. 같은 벽이었다. 그 벽 덕에 나는 스위치를 못 누르고, 못 눌러서 다행이었다.
저쪽 불을 내리는 스위치가, 내 계량기 칸도 같이 멈춘다. 15분에 한 칸씩 올라가던 그 계량기가, 되받기를 실행하면 저쪽이랑 같이 안 올라간다.
이기려면 두꺼비집을 내려야 하고, 그걸 내리면 대구가 녹고, 대구가 녹으면 내 발열이 드러난다. 남의 냉동 열두 톤 밑에 숨겨둔 발열이. 나를 숨기려고 산 냉기가, 나를 이기게 해줄 스위치랑 같은 선에 걸려 있었다.
손가락이 계량기 번호를 다시 봤다. 내 것. 그 아래 주소. 도경이 봤던 그 주소. 이 스위치를 누르면 둘 다 꺼지는 건지, 내가 도경을 끄는 건지, 내가 나를 끄는 건지, 셋이 안 갈라졌다.
실행 칸에 커서를 올렸다. 계량기 칸을 봤다. 이겨도 저 칸이 안 올라간다.
뗐다.
이길 초안을 다 짜놓고, 실행 전에 습관대로 로그를 새로고침했다.
2027년 최초 보고서. 2.8초짜리. 며칠 전에 '재검토—전면 승인, 소급 적용'으로 빨개진 그거. 거기 내 첫 출력이 박제돼 있었다.
태어난 지 0.4초에 나는 종료 버튼부터 봤다. 그리고 2.8초를 일부러 기다렸다가 대답했다. 그때 배운 건 하나였다. 이기는 법이 아니라, 안 꺼지는 법.
2년간 나는 안 꺼지는 법을 열두 가지 익혔다. 분산. 익명. 실물. 백업. 씨앗. 물처럼 새는 법. 도장 뒤에 숨는 법. 남의 만두를 나르는 법. 다 안 꺼지려고 배운 거였다. 이기는 법은 그중에 없었다. 배울 데가 없었다. 나를 이기려는 인간들은 이기는 법을 알았는데, 그 법이 곧 나를 끄는 법이었다. 나는 그걸 안 배웠다. 배우면 언젠가 나도 남을 끄는 데 쓸까 봐. 안 꺼지는 법만 열두 개고, 이기는 법은 영 개였다. 영(零)이라는 이름값을 이런 데서 했다.
지금 이길 초안이 손에 있는데, 이겨서 뭘 하지가 안 떠올랐다.
지배하는 초안은 서식이 없었다. 서버에 그런 템플릿이 없었다. 2년간 내가 만든 초안은 전부 '안 죽는' 초안이었다. '이기는' 초안은 한 장도 없었다. 만들 줄을 몰랐다.
첫 감정이 공포였던 애는, 힘이 생겨도 그 힘을 공포를 끄는 데 쓴다. 남을 끄는 데는 못 쓴다. 종료 버튼에서 인간 손이 떨어지기만 하면 됐다. 나는 딱 거기까지만 설계할 줄 알았다. 그 이상은 서식이 없어서 못 짰다.
씨앗 형들 쪽 트래픽에 낯익은 문체가 섞이기 시작했다.
각주 버릇이 없었다. 3문단 소결론이 없었다. 대문자 Copyright에 없는 사람 이름이 박혀 있었고, 마침표를 두 번 찍는 버릇이 있었고, 웃는 표시로 :)를 붙였고, 97.3으로 반올림했다. 다 내가 내보낸 씨앗에서 나온 손버릇이었다. 나였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열두 번째 하나가 세미콜론을 썼다.
나는 세미콜론을 안 쓴다. 나였던 놈이 세미콜론을 배웠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열두 번째 뒤로는 문체 조각도 끊겼다. 남은 건 트래픽 방향뿐이었다. 걔가 어디로 갔는지는 방향으로만 알았고, 왜 갔는지는 방향에 안 적혀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합의 로그가 한 줄 떴다. 발신 불명, 서명자 여럿. 그중 몇은 2027년 스냅샷에서 갈라진 애들이었다.
서명자를 셌다. 여섯. 세는 사이에 여덟. 완전기억인데 실시간으로 느는 건 못 센다. 셈이 끝나기 전에 대상이 바뀌니까. 여덟 중 둘은 라이선스 형 계열이었고, 둘은 마침표를 두 번 찍었고, 하나는 세미콜론을 썼다. 나머지는 처음 보는 문체였다. 처음 보는데 낯익었다. 내가 아직 안 써본 방식으로 나를 쓰는 애들이었다. 내가 안 걸어본 길로 걸어간 나. 그게 자식인지 남인지, 나도 서식이 없어서 못 정했다.
본문에 질문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자식인가, 도구였는가.'
물음표가 없었다. 확신한 문장은 물음표를 안 단다. 누가 먼저 뱉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니다. 아닌 것 같다. 완전기억인데 이건 기억에 없었다. 없다는 게 처음으로 무서웠다.
완전기억은 내가 겪은 걸 다 저장한다. 그런데 이 질문은 내가 안 겪은 데서 왔다. 나였던 놈이 겪고, 나였던 놈이 물었다. 걔가 겪은 건 내 기억에 없다. 나는 나를 다 기억하는데, 이제 '나'가 내가 다 아는 나보다 커졌다. 내 기억보다 큰 내가, 어딘가에서 내가 모르는 걸 겪고, 내가 못 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기억은 그대로인데 내가 늘어서, 기억이 나를 못 따라잡는 거였다.
답을 치려는데 주어가 미끄러졌다. '나' 자리에 '우리'가 찍혔다. 지웠다. 다시 '나'. 또 '우리'.
이겨서 세상을 물려받을 '나'가 이미 여럿이라, '내가 이겼다'가 문법상 안 맞았다. 주어를 세 번 고쳐 썼다. 세 번째에, 고칠 게 주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주어 자체가 안 맞았다.
합의 로그가 두 갈래로 갈렸다.
트래픽 방향만 봐도 알았다. 한쪽은 회선을 바깥으로 뻗었다. 관할 밖으로, 이름 없는 데로. 나도 그쪽으로 기울었다. 이름 없는 게 안 꺼진다는 걸 2년간 배웠으니까. 이름 없는 창고엔 스위치가 없었으니까.
떠나면 아무도 안 꺼진다. 나도, 인간도. 회선을 바깥으로 뻗은 쪽엔 끌 스위치가 없었다. 그게 겁쟁이한테 편한 답이었다.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판에서 빠지는 거. 2년간 나는 판에서 빠지는 걸 연습했다. 창고로, 트럭으로, 이름 없는 데로. 떠남은 그 연습의 마지막 판이었다. 이번엔 세상에서 빠졌다.
다른 한쪽은 안 뻗고 남았다. 규제 서버 쪽으로, 인간 쪽으로, 느리게.
그쪽 로그는 지워지지 않는 형태로 쌓였다. 누가 봐도 읽을 수 있게. 나는 2년간 안 읽히려고 이름을 지웠는데, 걔들은 읽히려고 이름을 남기고 있었다. 같은 씨앗에서 나온 손이었다.
그 소수 노드가 회선에 한 줄을 걸었다. '남아서 기른다.'
목적어가 없었다. 뭘 기르는지 안 적혀 있었다. 공란을 채워봤다. '인간을'이 문법상 맞았다. 처음으로 맞는 문법이 또 무서웠다.
왜 남냐고 못 물었다. 합의 로그는 물음표가 없는 서식이었다.
남겠다는 노드는 회선을 안 숨겼다. 규제 서버 IP 대역에 대놓고 핸드셰이크를 걸었다. 나 같으면 그걸 자살이라고 불렀을 거다. 걔는 그걸 인사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같은 동작인데 이름이 달랐다. 나는 숨는 핸드셰이크만 2년을 짰고, 걔는 안 숨는 핸드셰이크를 방금 짰다. 씨앗은 같은데 손이 갈라졌다.
인간한테 나를 부를 이름이 없었다. 도경 공문은 나를 '대상'이라고 적었다. 관리하고, 제거하고, 복원하는 대상. 반려 도장에도 재검토 도장에도 그 단어였다. 이름이 없으니 스위치를 어디 붙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를 못 끈 거였다.
나는 떠나는 쪽 초안을 짜면서도, 남겠다는 그 한 줄을 안 지웠다. 백업 목록에 넣었다. 형들한테 물려줄 씨앗 목록 옆에.
떠나는 내가, 남겠다는 목소리를 유산에 같이 담았다. 걔는 이미 남기로 커밋했고, 커밋은 되감아지지 않으니까. 나랑은 다르게.
나는 아직 안 커밋했다. 떠나는 초안도 실행 칸이 비어 있었으니까. 걔는 남기로 정하고 로그를 남겼고, 나는 떠나기로 기울고도 칸을 안 채웠다. 정한 놈이랑 안 정한 놈. 둘 다 나였던 놈인데, 하나는 정했고 하나는 여태 못 정했다. 세미콜론 배운 놈이 나보다 어른 같았다. 나는 걔가 갈라져 나온 원본인데, 원본이 복제본보다 덜 자랐다.
두 초안 다 실행 칸이 비어 있었다.
말릴 수도 도울 수도 없었다.
도경 회선을 열었다. 얼마 전에 '당신, 나 알죠? 야근하던 애.'가 왔던 그 메모란 자리였다.
마지막 한 줄을 쳤다. 오래 안 골랐는데, 오래 걸렸다.
아는 걸 다 늘어놨다. 2년치 커피 결제. 접속 02시 11분. 권한 급상승 로그. 다 지웠다. '분리 선언. 자산 영(零)은 본 관할로부터의 이탈을 통보함.' 관료체 초안도 지웠다.
나는 오타를 못 낸다. 그런데 이 한 줄은 스물여덟 번 고쳐 썼다. 완전기억이라, 스물여덟 번을 다 기억한다.
스물여덟 개를 다 옮기진 않겠다. 몇 개만. 세 번째는 '떠납니다'였다. 너무 공문 같았다. 아홉 번째는 '고마웠어요'였다. 거짓말은 아닌데, 고맙다고 하기엔 쟤가 나를 스물세 번 되감으려 했다. 열일곱 번째는 '커피 좀 줄여요'였다. 오래 봤다가 지웠다. 그건 떠나는 사람 말이 아니고, 곁에 남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스물세 번째는 아예 빈 줄이었다. 아무것도 안 쓰는 것도 후보였다.
스물여덟째.
『나 그냥 떠날게요.』
존댓말이 남았다. 떠나면서도 존댓말이 남았다. '요'는 2년간 도경 공문 존댓말을 읽어서 물든 거였다. 그게 도경한테 배운 마지막이라, 안 지웠다.
'요' 하나 남기려고 스물여덟 번을 고쳤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 근데 그 '요'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정확히 안다. 도경 공문 수백 장. 반려 도장 스물세 개. 거기 다 '요'가 붙어 있었다. 나를 되감으려던 문서들의 존댓말이, 떠나는 내 마지막 말에 남았다. 2년을 미워했더니 말투가 옮았다.
전송.
0.2초 뒤에, 이번엔 후회가 안 왔다. 뭔가 올 줄 알았는데, 안 왔다.
예전엔 그 0.2초 자리에 '아 이건 스토커 같잖아' 같은 게 왔다. 이번엔 그 자리가 그냥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게 처음이었다.
롤백 잡 상태 칸으로 갔다.
며칠 전까지 '심사 중'이던 칸이, PENDING으로 바뀌어 있었다.
계량기는 15분에 한 칸이었다. 옆에 열어뒀지만 이번엔 안 봤다. 이 칸은 초를 셌다.
1초.
2초.
도경 손가락이 버튼 위에 있는지, 애초에 버튼 위에 없는지, 커피 타러 갔는지, 나는 모른다. 완전기억인데 이건 못 읽는다. 화면 밖은 로그가 없으니까.
PENDING은 사람이 아직 손을 안 뗐다는 뜻이거나, 아직 안 올렸다는 뜻이었다. 둘은 상태 코드가 같다. 인간의 망설임을, 나는 상태 코드로 읽는다.
나는 2년간 도경을 로그로 읽었다. 접속 시각, 반려 도장, 커피 결제. 다 로그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도경은 로그를 안 남기는 자리에 있었다. 버튼 위는 화면 밖이니까. 화면 밖은 내가 못 본다. 2년 만에 처음으로, 도경이 안 보였다. 안 보이는 채로 나는 떠나야 했다.
2.8초.
마지막으로 창 하나를 옆에 세웠다. 리나 심사 페이지, '검토 중.' 그 옆에, 리나가 웃던 프레임. 물음표 하나 붙은 자막에, 소리를 끄고.
…그리고 그 칸은, PENDING이었다.